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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570
한자 李誠彦
영어공식명칭 Yi Sungun
이칭/별칭 이가종,문정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80년연표보기 - 이성언 출생
출생지 이성언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묘소|단소 이성언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계명길 33[도성리 460-29]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문정사(文定祠) -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신평길 277-11[도성리 484]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신평(新平)
대표 관직 이조 판서|홍문관 부제학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개설]

이성언(李誠彦)[1380~?)]은 조선 세종 때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는데, 이가종(李可種)이라고도 한다. 신평 이씨 문정공파의 파조이며, 신평 이씨 종중은 문정사(文定祠)를 세워 이성언을 제향하고 있다.

[가계]

이성언의 본관은 신평(新平),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예조 판서를 지낸 이상원(李上垣)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이성언은 다섯 살 때인 1384년(우왕 10)에 글을 지을 정도로 총명하였다고 전한다.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의 교위(修義校尉) 신무 시위(神武侍衛) 등을 거쳐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이조 참의,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다. 정종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는 이조 참판을 지냈고, 그 뒤 여러 차례 명에 다녀왔다. 특히 1405년(태종 5) 26세의 나이로 명나라에 갔을 때 명나라 황제가 이성언의 뛰어난 자질을 보고 “아름답다, 어질다, 동방에 이런 영특한 사람이 몇이나 있느냐?” 하고 금과 비단을 상으로 주려 하였다. 이성언은 사양하면서 “과하게 하사를 받음은 신의 본뜻이 아니옵고, 다만 강남의 매화 한 가지 얻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황제는 더욱 칭찬하면서 “청백(淸白)하다. 이 사람이여, 가히 씨받을 만한 사람이다.” 하고 ‘가종(可種)’이란 이름과 매화 한 그루를 하사했다. 이성언이 고국에 돌아와 말하길 “내가 만 리의 먼 곳을 갔다 온 것이 다만 강남의 봄빛이라.” 하니 세상 사람들이 영화로이 여겼다고 전한다.

이성언세종 때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부제학을 끝으로 벼슬을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세조이성언이 사망한 뒤에 문정(文定)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묘소]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도성리 망객산(望客山) 동쪽 기슭에 이성언의 묘소가 있는데, 최근에 골프장이 건설되어 골프장 안에 위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이성언을 배향하는 사당이 문정사(文定祠)이다. 비석이 문정사 입구인 망객공원에 서 있으며, 문정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초이튿날에 이성언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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