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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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所夫里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김기섭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개설]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
538년부터 660년까지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는 일명 소부리(所夫里)라고도 불리었는데, 신라의 서라벌(徐羅伐)과 마찬가지로 수읍(首邑), 수도(首都)라는 뜻의 지역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소부리[사비]는 한동안 당나라 군대의 통제를 받으며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에 속하였으나, 나당 전쟁 중이던 신라가 671년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함으로써 신라의 지방 행정 단위로 편제되었다. 그리고 686년에 소부리군으로 개편되었는데, 이때 웅천군(熊川郡)[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을 웅천주(熊川州)로 승격시켜 소부리군을 관할하게 하였다.
[내용]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6 백제본기 성왕 16년(538) 조에는 “봄에 도읍을 사비[소부리(所夫里)라고도 한다]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백제 왕도 사비(泗沘)를 소부리로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권36 지리지3에는 “부여군은 본래 백제 소부리군으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유신과 함께 평정하였으며 문무왕 12년에 총관을 두었고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조에는 “부여군은 전백제(前百濟)의 왕도인데 소부리군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성왕 16년 무오(戊午)년 봄에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하였는데, 주석을 붙여 놓기를 ‘그곳 이름은 소부리이고, 사비는 지금의 고성진(古省津)이다. 소부리는 부여의 또 다른 이름이다’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소부리’라는 이름이 언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지만, ‘서울’을 가리키는 백제 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라면 538년에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 생긴 이름일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동성왕 12년(490) 9월에 “왕이 나라 서쪽 사비(泗沘) 벌판에서 사냥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천도 이전에 이미 ‘소부리’라는 지명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비와 소부리는 같은 소리를 달리 표현한 한자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