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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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王興寺岑城 戰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660년 11월 5일부터 7일간 왕흥사잠성에서 백제부흥군이 신라군과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660년 7월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 의례를 행한 이후 백제 고지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났다. 9월 3일 소정방이 의자왕을 비롯하여 백제 왕족 및 백성들을 데리고 당으로 귀국하면서, 사비성에는 유인원과 군사 1만을 남겨 지키도록 하였다. 이에 백제부흥군은 사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공략을 시작하였으며, 주변의 여러 성들도 호응하였다.
[경과]
660년 9월 백제부흥군의 사비성 공격이 심화되자 신라 무열왕은 10월부터 부흥군의 거점 성에 대한 점령에 나섰다. 이에 사비성 주변의 20여 성이 모두 항복하였으며, 11월 5일에는 계탄을 건너 왕흥사잠성을 공격하였다. 왕흥사잠성 전투(王興寺岑城 戰鬪)는 7일 동안 벌어졌으며, 백제부흥군 700명이 전사하였다. 왕흥사잠성은 현재 왕흥사 뒷산 정상부에 남아 있는 울성산성으로 비정된다. 울성산성은 테뫼식 토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350m이다.
[결과]
신라 무열왕이 사비 남령의 목책을 공격하여 백제부흥군 1,500명을 죽이고, 11월 5일 왕흥사잠성을 공격하였다. 백제부흥군은 7일 동안 신라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700명이 전사하면서 패배하였다. 왕흥사잠성 전투를 끝으로 신라 무열왕이 회군하여 논공행상을 한 것으로 보아, 왕흥사잠성 전투를 끝으로 사비성에 갇혀 있던 나당연합군은 포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의의와 평가]
왕흥사잠성 전투는 백제부흥군의 사비성 회복을 위한 전투 가운데 하나였다. 왕흥사잠성 전투의 패배로 백제부흥군의 사비성에 대한 공략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