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21
한자 鴻山縣
영어공식명칭 Hongsan-hyeon
이칭/별칭 대산(大山),한산(翰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엄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홍산현에서 홍산군으로 개편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관련 기록]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홍산현(鴻山縣)을 성주산(聖住山) 동편에 위치한 고을로 인근의 임천(林川)·정산(定山) 등과 함께 풍속이 비슷하며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한 사대부 집안이 많다고 설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홍산현의 풍속에 대해서 문무를 숭상하며, 누에 치기에 힘쓴다고 하였다.

[내용]

홍산현의 이칭으로는 대산(大山)·한산(翰山)이 있었다. 군현에는 종6품의 현감(縣監)이 파견되었고, 종9품인 훈도(訓導)가 현감을 보좌하였다. 홍산현의 위치를 살펴보면 동쪽으로 부여현임천군, 남쪽으로 한산군·서천군, 서쪽으로 남포현과 비인현, 북쪽으로 홍주와 인접하여 있었다. 홍산군 내에는 18세기 중반에 편찬된 『여지도서』를 기준으로 현내면(縣內面)·상서면(上西面)·하서면(下西面)·남면(南面)·상동면(上東面)·해안면(海岸面)·대야곡면(大也谷面)·내북면(內北面)·외북면(外北面)까지 9개 면이 있었고, 각 면 내에는 향사당리(鄕射堂里)·자명리(自鳴里)·고만리(高巒里) 등 동리가 편성되어 있었다.

지역 내 토성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기준으로 한(韓)·임(林)·양(凉)·순(荀)과 이주하여 온 속성(續姓)으로 김(金)·박(朴)·경(京)·이(李)가 있었다. 조선 후기 자료인 『여지도서』에는 기존 8개 성씨에 임(任)·윤(尹)·신(申)·신(辛)·정(鄭) 5개의 성씨가 추가로 확인되는데 16~18세기 사이, 특히 임진왜란을 계기로 새로운 사족 집단이 홍산현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처럼 새로운 성씨가 대거 유입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홍산현 내 토착 세력이 타 지역에 비하여 약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이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왕실 서얼 출신으로 홍산현 구룡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1596년에 홍산현에서 난을 일으킨 이몽학을 들 수 있다. 1596년에 발생한 이몽학의 난으로 인하여 반란이 처음 발생한 지역이었던 홍산현이 혁파되기도 하였다.

홍산현의 경제적 상황을 상황을 19세기 중반 자료인 『호서읍지(湖西邑誌)』를 통하여 살펴보면 우선 토지 중 한전(旱田)은 원장부(元帳付) 1,972결에 시기결(時起結)은 1,118결이었고, 수전(水田)은 원장부(元帳付) 2,244결, 시기결은 1,415결이었다. 지역 내 편호(編戶)는 422호였고, 남자는 983명, 여자는 896명으로 총 인구는 1,879명이었다. 홍산현의 환곡은 1864년(고종 1) 합록미(合錄米)가 586석, 1866년(고종 3) 별비조(別備條)가 2,931석이 있었다. 이 외에 홍산현 내에 편성된 군역으로는 우선 중앙아문의 납포(納布) 양군(良軍)으로 1,069명, 납미(納米) 양군이 426명, 상번하는 정군(正軍)이 55명으로 경안부(京案付)에 총 1,550명이 올라 있었고, 지방군으로는 감영 소속 어변군관(禦邊軍官) 36명, 사수(射手) 2명 등 외안부(外案付)에 총 44명이 편성되어 있었다.

지역 내 시설로는 먼저 교통역으로 이인도(利仁道) 소속의 숙홍역(宿鴻驛)이 있었고, 여행자의 편의를 돕는 녹한원(鹿閒院)·광명원(廣明院)·율현원(栗峴院) 등이 지역 내 교통 시설로 있었다. 교육 시설로 향교가 있었고, 광해군 연간에 설립된 청일사(淸逸祠)와 1717년(숙종 43)에 세워진 창렬사(彰烈祠)가 있었다. 청일사는 1704년(숙종 30), 창렬사는 1721년(경종 1)에 각각 사액을 받았다. 이 외에도 군현 내 사직단·문묘·성황사·여단 등이 있었다.

[변천]

홍산현은 백제 때 대산현(大山縣)이었다. 통일 신라에 병합된 이후인 경덕왕 연간 지방 군현의 명칭을 개정하면서 한산현(韓山縣)이라고 고쳐졌고, 가림군(嘉林郡)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초에 현재의 홍산현(鴻山縣)으로 개정되었으며, 고려 명종 연간인 1175년(명종 5)에 한산감무(韓山監務)가 지방관을 겸직하였다. 조선 초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진 1413년(태종 13)에 가서 다시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 내내 홍산현을 유지하다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과정에서 홍산군(鴻山郡)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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