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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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餘普光寺址 |
영어공식명칭 | Bogwangsa Temple Site, Buy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 618-1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김영국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5년 10월 7일 - 부여보광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98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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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 부여보광사지 충청남도 역사문화원에서 지표 조사 실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보광사지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소재지 | 부여보광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 618-1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14,928㎡ |
소유자 | 국유|사유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개설]
보광사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보광사지와 관련된 유물로는 고려 시대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비로서 2023년 현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扶餘 普光寺址 大普光禪寺碑)[보물]가 있다. 부여보광사지는 1995년 10월 7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변천]
보광사의 초창 시기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으며, 중창 시기는 보광사 중창비가 건립된 1358년(공민왕 7)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사가 모두 소실되었으나, 문헌에 보광사의 존재가 나타나고 있어 16~17세기까지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보광사가 없거나 또는 폐허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19세기 후반에는 이미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의 가신2리 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조성된 가신로를 따라 1.5㎞ 정도 가면 성주산의 중턱 산기슭에 부여보광사지가 있다. 원래의 사찰은 모두 소실되고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사지에는 최근에 조영된 대웅전 1채와 요사로 사용되고 있는 민가 몇 채가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에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지표 조사의 수습 유물은 주로 기와 조각이었으며, 이 가운데 명문와가 포함되어 있다.
[현황]
부여보광사지의 사역은 보광선원을 중심으로 앞쪽 경작지 일대로 추정된다. 사역 상단부에는 전주 이씨의 묘가 조성되어 있고, 그 앞쪽으로 비좌 1기가 남아 있다. 사역 북쪽에 대웅전이 건립되어 있으며, 대웅전 앞 마당에는 다수의 석조물이 산재하여 있다. 대웅전 북쪽에는 민가 몇 채가 있다. 사역 동쪽에는 민묘와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민묘 상단에는 사찰 유구로 추정되는 석축이 일부 남아 있다. 유물은 사역에서 전체적으로 확인되는데, 어골문·집선문 등의 기와 조각과 청자 조각, 흑유자 조각, 백자 조각 등 다양하다.
[의의와 평가]
부여보광사지는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를 통하여 고려 말에 중창되어 고려 시대에 대규모 사찰로 운영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여보광사지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 원명국사가 입적한 사찰로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추후 정밀 조사를 통하여 사역과 보광사의 역사성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