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641 |
---|---|
한자 | 扶餘扶蘇山城西覆寺址 |
이칭/별칭 | 서복사지,부소산 사지,부소산 폐사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24 외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홍보식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42년 9월 -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 후지사와 가즈오와 요네다 미요지가 1차 발굴 조사 실시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0년 11월 17일~1980년 12월 30일 -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충남대학교 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이 발굴 조사 실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4월 10일 -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61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소재지 |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24 외 |
성격 | 절터 |
지정 면적 | 3,531㎡ |
관리자 | 부여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위치]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는 백제 사비 시기의 후원으로 추정되는 부여 부소산성 내부의 부소산 서남록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는 1942년 9월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에 의하여 처음 조사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발굴 경과는 정식 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은 채 후지사와가 남긴 일기에서 확인된다. 후지사와의 일기에 따르면, 조선총독부의 고적 조사 촉탁으로 임명된 후지사와 가즈오는 충청남도 부여군에 도착한 후 부여정림사지를 발굴하기 전 연습용으로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를 조사하였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간행한 『박물관신문』에 따르면, 1942년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 발굴 조사는 후지사와 가즈오와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에 의하여 실시된 것으로 언급되었고, 후지사와 가즈오의 일기에도 요네다 미요지의 조사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중문지, 탑지, 금당지, 회랑지가 확인되었다. 1942년 발굴 조사 이후 사명(寺名)이 밝혀지지 않아 부소산 서쪽 중복에 있다고 하여 서복사지로 불리거나 부소산 폐사지, 부소산 사지로 알려졌다.
1942년 발굴 조사에 이은 2차 발굴 조사는 1980년 당시 ‘중서부 고도 문화권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유적에 대한 조사와 정비가 진행되었는데, 그중 ‘부소산성 사적 공원 조성 계획’으로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2차 발굴 조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충남대학교 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하여 1차 조사 시 확인된 중문지, 탑지, 금당지, 회랑지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2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중문-목탑-금당이 남북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었음이 확인되었지만, 강당은 확인되지 않았다.
[형태]
중문지는 경사지에 성토를 하여 평탄 대지를 조성하고, 치석된 화강암을 사용하여 기단을 마련하였는데, 높이는 약 1.8m이고, 동서 길이는 16m이다. 목탑지는 풍화된 자연 암반을 주위보다 약간 도드라지게 깎아 다듬고, 외곽에 홈을 파고 기단석을 설치하였다. 목탑지의 규모는 약 7.95~8.05m이다.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의 가장 북쪽에 있는 금당지는 기반암층을 정지하여 조성하였는데, 가장자리에는 지대석을 놓았던 홈이 확인된다. 기단은 이중의 석축 구조이다. 기단 규모는 동서 16.3m, 남북 13.6m이다. 회랑지는 동쪽과 서쪽의 일부 구간에서 확인되었고 남쪽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역의 중심부 외곽을 감싸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회랑지의 기단에서는 평적식의 와적 기단이 확인되었다.
2차례의 발굴 조사에서 치미, 코끼리 소조상, 납석제 동단식와, 금동제 허리띠 꾸미개, 연화문 수막새, 인장와, 마루끝 장식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특징]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는 중문-목탑-금당이 남북축선상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 사비 시기의 가람 배치를 보인다. 사비 시기의 불교 사찰 대부분이 지반을 성토하여 대지를 조성하였으나,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는 기반암을 깎아 각 건물지의 기초부를 조성한 점이 특징이다.
[현황]
백제의 토목 건축 기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어 2004년 4월 10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여부소산성서복사지는 왕궁의 후원이자 피난성인 부여 부소산성 내부에 있는 불교 사찰이며, 기반암을 깎아 각 건물의 기초부를 조성하였다. 이는 백제가 자연 지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사찰 건물을 조성한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백제의 토목 건축 기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