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26
한자 木川 尙氏
영어공식명칭 Mokcheon S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근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목천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입향지 임천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도보기
성씨 시조 상국진(尙國珍)
입향 시조 상원(尙愿)

[정의]

상국진을 시조로 하고 상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연원]

목천 상씨(木川 尙氏)의 시조는 고려 초에 목천(木川)[현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일대] 호장을 지낸 상국진(尙國珍)이다.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고려가 통일 왕조를 세우자 후백제의 유민인 상국진은 목천 상왕산(尙王山)을 기반으로 항쟁을 이어 갔다. 이에 분노한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상국진에게 가축 이름인 ‘상(象)’을 사성하였고, 이후 상국진의 아들 상득유(尙得儒) 대에 원래의 성씨인 ‘상씨(尙氏)’로 회복하였다고 한다.

목천 상씨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상자산(尙子産)을 파조로 하는 부여파(扶餘派), 상자화(尙子華)를 파조로 하는 원주파(原州派), 상자천(尙子賤)을 파조로 하는 풍덕파(豐德派)로 분파되었다. 조선 시대에 상영부(尙英孚)는 임천(林川)에 거주하며 많은 재물을 모았는데, 형편이 어려운 고을 사람들에게 재물을 빌려주곤 하다가 말년에 문권을 모두 불사르며 “내 후손 중에 귀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후 상영부의 손자인 상진(尙震)[1493~1564]은 명종 연간에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입향 경위]

상국진의 손자 상원(尙愿)이 목천에 살다가 지금의 부여군 임천면 일대로 이거하였고, 이후 후손들이 계속 부여 지역에서 세거하였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지금의 남양주나 원주 등지로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현황]

1987년에 발간된 『부여군지』에 따르면 부여군의 목천 상씨는 총 24호이며, 거주지로는 부여읍 4호, 은산면 15호, 홍산면 1호, 남면 3호, 임천면 1호로 파악되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국의 목천 상씨는 2,272명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상진은 관직 생활 중 틈틈이 고향을 찾아 정암리백마강 언덕에 요월대(邀月臺)와 월파정(月波亭)을 짓고 독서하면서 후학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상진이 지었다고 하는 요월대와 월파정 등의 유적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정승을 배출하였다고 하여 상진이 태어난 동네를 합하골이라고 한다는 유래만 전한다. 또한 정암리의 장암[맛바위]에는 상진이 건립한 범허정(汎虛亭)이 있었다고 한다.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에는 목천 상씨 정려가 있으며, 부여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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