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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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原 黃氏 |
영어공식명칭 | Changwon Hwa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62년 - 황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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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 시기/일시 | 1607년 - 황신 부여 입향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617년 - 황신 사망 |
본관 | 창원 - 경상남도 창원시 |
입향지 | 수락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송곡리 |
성씨 시조 | 황병고(黃丙古) |
입향 시조 | 황신(黃愼) |
[정의]
황락을 도시조로 하고 황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세거 성씨.
[연원]
창원 황씨(昌原 黃氏)의 도시조는 중국 한(漢)나라의 장군이던 황락(黃洛)이다. 황락은 사신으로 교지국(交趾國)[베트남]에 다녀오던 중 풍랑을 만나 지금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표류하였고, 황락의 셋째 아들인 황병고(黃丙古)가 창원백(昌原伯)에 책봉되어 후손들이 창원을 본관으로 삼았다.
창원 황씨는 이후 고려 충정왕 때 회산군(檜山君)에 책봉되고 문하평장사를 역임한 황석기(黃石奇)[?~1364]가 파조인 공희공파(恭僖公派), 시중을 역임한 황충준(黃忠俊)[?~?]가 파조인 시중공파(侍中公派), 황양충(黃亮沖)[?~?]이 파조인 호장공파(戶長公派) 등으로 분파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창원 황씨 부여 입향조는 공희공파 후손인 황신(黃愼)[1562~1617]이다. 황신은 1607년(선조 40)에 당시의 정치 현실에 회의를 느껴 처가가 있는 부여로 낙향하였는데, 장인인 원천군(原川君) 이휘(李徽)로부터 노비 등을 별급(別給)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황신은 처음에는 부여의 수락(水落)[현 부여읍 송곡리]에 정착하였고, 이후 천정대(天政臺)[현 규암면 호암리]로 옮겼다가 창두지(倉頭地)[부여읍 저석리]에 정착하였다. 황신은 동생 황척(黃惕)의 아들 황일호(黃一皓)[1588~1641]를 양자로 입적하였으며, 황일호는 후일 부여의 의열사(義烈祠)에 향사되었다. 이후 후손들 다수가 부여에서 선영을 조성하고 집성촌을 형성하며 지역의 유력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현황]
창원 황씨는 부여군 외산면 비암리, 홍산면 북촌리, 석성면 비당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1987년에 발간된 『부여군지』에 따르면 부여군의 창원 황씨는 총 218호이며, 20호 이상 거주지로는 부여읍 56호, 규암면 21호, 은산면 24호, 외산면 38호, 세도면 20호, 석성면 29호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부여 창원 황씨 관련 유적으로는 부여읍 저석리에 황신을 배향하는 창강서원(滄江書院)과 황신의 묘소가 있으며, 창강서원에는 황신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부여읍 가증리에 황일호를 배향하는 지소사(之所祠)와 황일호 신도비, 황일호의 아들 황진(黃璡)의 정려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