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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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翹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왕족.
[가계]
교기(翹岐)[?~?]는 백제 제31대 의자왕 동생의 아들로 추정되기도 하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 643년(의자왕 3) 4월 “백제국주의 자식 교기와 아우 왕자가 조문사와 함께 일본에 왔다”라고 기록된 부분을 근거로 의자왕의 아들로 추정되기도 한다.
[활동 사항]
의자왕은 642년 어머니의 사망을 계기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친위 정변을 일으켰다. 교기는 친위 정변에 연루되어 의자왕 어머니의 자매, 또는 자매의 자식 4인과 내좌평(內佐平) 기미(岐味), 명망 있는 자 40여 인과 함께 섬으로 추방되었으며, 곧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서기』에는 642년 4월경 교기가 대사(大使)로 기록되어 있으며, 종자들과 일본 조정에 알현하였다고 한다. 며칠 뒤 교기는 우네비[畝傍]의 집에서 소가[蘇我] 대신을 만나 좋은 말 1필과 철정(鐵鋌) 20정을 받기도 하였다. 642년 5월 교기의 종자 1명이 죽고 바로 다음 날 아들 역시 사망하였는데 두렵고 꺼리는 마음이 있어 아들의 장례에는 참석하지 않고, 이틀 뒤 백제인 대정(大井)의 집으로 옮긴 뒤에 사람을 보내어 죽은 아들을 석천(石川)에서 장사 지냈다. 또, 642년 7월에는 백제에서 대좌평(大佐平) 지적(智積) 등의 사신이 와서 일본 조정에서 베푼 연회가 끝난 뒤 교기를 문안하였다.
교기는 의자왕의 왕권 강화 과정에서 추방되었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후 소가 대신의 우대를 받아 백제에서 사신으로 온 것처럼 기록되었으며, 일본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활동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