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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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湖 |
영어공식명칭 | Choe Ho |
이칭/별칭 | 수부(秀夫),청중(淸仲),계성군(鷄城君),충원(忠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운 무신.
[가계]
최호(崔湖)[1536~159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수부(秀夫) 또는 청중(淸仲)이다. 할아버지는 최천손(崔千孫)이고, 아버지는 벽동군수(碧潼郡守) 최한정(崔漢禎)이다. 어머니는 김계옥(金繼玉)의 딸 광주 김씨(光州 金氏)이다.
[활동 사항]
최호는 1536년(명종 1)에 태어나 1574년(선조 7) 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1576년 무과 중시에 장원급제하였고, 1577년 사복시주부가 되었다. 1580년 추파참정만호를 거쳐 1581년 사옹원주부·군자감주부·강진현감을 역임하였다. 1587년 무안현감을 지냈으며, 1589년 용강현령과 훈련원판관을 거쳐 1592년 함경남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다.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재직 시에는 가을파지보(茄乙波知堡)에 시장을 열어 변방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1596년 충청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였고, 부여에서 이몽학(李夢鶴) 등이 반란을 일으켜 홍주로 진격하자 군사를 이끌고 홍주를 수비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최호는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원균(元均)의 휘하에서 칠천량 해전에 참여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호는 1607년 청난공신(淸難功臣) 2등에 녹훈되고 계성군(鷄城君)에 책봉되었다. 1615년(광해군 7)에 편찬한 임란공신록에도 추록되었고, 충원(忠元)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