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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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遲受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김기섭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의 무신.
[활동 사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28 「백제본기」에 따르면, 660년(의자왕 20) 8월에 부여풍이 이끄는 백제부흥운동군은 왜국이 보낸 군사 2만 7000명과 함께 힘을 합친 뒤 백강(白江) 어귀에서 나당 연합군과 네 번 싸웠는데, 왜군의 배 400척이 불타고 많은 병사가 몰살하였으며 풍왕은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로 도망갔다고 한다. 이어서 660년 9월 7일에는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인 주류성(周留城)이 신라군 주축의 연합군에게 함락되었고, 백제 왕자 부여충승(扶餘忠勝)·충지(忠志) 등이 무리를 이끌고 왜인과 함께 항복하였으나 지수신(遲受信)[?~?]만이 임존성(任存城)에 의지하며 항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당나라는 백제부흥운동군에서 활동하다가 항복한 흑치상지(黑齒常之)와 사타상여(沙咤相如)를 회유하여 지수신이 지키는 임존성을 공격하게 하였고, 흑치상지와 사타상여가 마침내 임존성을 빼앗자 지수신이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고구려로 달아났으며 나머지 무리는 모두 평정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6 「신라본기」 663년(문무왕 3) 4월, 『구당서(舊唐書)』 권84 「유인궤(劉仁軌)전」, 『신당서(新唐書)』 권108 「유인궤전」 등에도 백제부흥군이 모두 항복하였는데 오직 지수신만은 임존성을 차지하고서 항복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간단하게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