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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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日+工 |
영어공식명칭 | Lee Gang |
이칭/별칭 | 강지(絳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출신의 의병.
[가계]
이강(李日+工)[1558~1592]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강지(絳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평안도관찰사를 지낸 이세응(李世應)이고, 할아버지는 대사간 이림(李霖)이다. 아버지는 이창형(李昌亨)이고, 어머니는 풍양 조씨(豐壤 趙氏)이다. 부인은 판관 오세인(吳世仁)의 딸 하동 오씨(河東 吳氏)이고, 아들은 이순성(李純誠)·이순억(李純億)이다.
[활동 사항]
이강은 1558년(명종 13) 3월 8일 부여에서 태어났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북쪽을 바라보고 통곡하였고, 조헌(趙憲)[1544~1592]의 창의 격문을 접한 후 분연히 떨쳐 일어나 공주에 있는 조헌의 의병 부대에 합류하였다.
조헌의 의병 부대는 영규(靈圭)가 거느린 승병들과 합세하여 8월 1일 청주성을 탈환하였고, 이후 금산에 진을 치고 호남 침공을 준비하던 왜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다시 공주로 이동하였다. 조헌과 700여 명의 의병들은 중과부적이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결연한 의지로 금산을 공격하였고, 조헌을 비롯한 의병들은 분전하였지만 전멸하였다. 이강 또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묘소]
이강의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50[의총리 135-1]에 있는 금산칠백의총이다.
[상훈과 추모]
이강은 1736년(영조 12)에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고, 1740년에 정려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