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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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南圭 |
영어공식명칭 | Bak Namgyu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10월 17일 - 박남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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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1년 1월 - 박남규 군자금 전달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박남규 독립운동 자금 제공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4월 - 박남규 봉명의숙 설립 |
몰년 시기/일시 | 1932년 10월 13일 - 박남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9년 - 박남규 건국포장 수훈 |
출생지 | 동방리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동방리 |
활동지 | 봉명의숙 -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봉명의숙 학감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남규(朴南圭)[1894~1932]는 1894년 10월 17일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동방리에서 태어났다. 1921년 1월 동방리에서 같은 고향 출신인 친척 박길화(朴吉和)의 소개로 장암면 장하리 출신 대종교 교인 강철구(姜鐵求)를 만났다. 강철구는 1920년 4월 북로군정서 재무국장 윤정현(尹庭鉉)의 명령을 받고 국내에 파견되어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었다. 강철구는 고향인 부여에서 문경섭(文瓊燮), 문장섭(文章燮) 등과 함께 부호들에게서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박남규가 강철구에게 건넨 800원은 북로군정서 서무부장 김택(金澤)에게 전달되었다.
1922년 6월 강철구는 사관연성소 확충 자금 모집차 임시정부 발행 공채 3만 5000원 상당의 문서를 가지고 입국하였다. 1922년 음력 8월 박남규는 강철구에게서 독립공채 3매를 받았다. 2~3일 후 부여군 남면 마정리 전영석(田泳奭)의 집에서 강철구 등을 만나 독립운동 자금 100원을 제공하고, 독립공채 100원 권 1매를 받았다. 1923년 4월에는 부여군 내 유지들과 4,000~5,000원을 각출하여 양화면 입포리에 봉명의숙(鳳鳴義塾)을 설립하고 학감을 맡았다. 1932년 10월 1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남규의 공적을 기려 201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