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52
한자 秋敎哲
영어공식명칭 Chu Gyochul
이칭/별칭 추재도(秋載道)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5년 5월 9일연표보기 - 추교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추교철 독립만세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7월 - 추교철 독립애국단 조직
활동 시기/일시 1920년 9월 5일 - 추교철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21년 4월 27일 - 추교철 공주지방법원에서 1년 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7월 7일 - 추교철 경성복심법원에서 1년 형 확정
몰년 시기/일시 1951년 2월 1일연표보기 - 추교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추교철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추모 시기/일시 2019년 - 추교철 부여군에서 애국지사 마을 표지석 설립
출생지 삼산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 지도보기
묘소 삼산리 -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충청남도 부여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추교철(秋敎哲)[1885~1951]은 1885년 5월 9일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1919년 7월 이범진(李範鎭) 등과 독립애국단을 조직하여 충남특무직을 맡았다. 상해임시정부와 연결되어 군자금 모금 지령을 받고 이기춘(李起春)의 집에 침입하여 금품 모집 활동을 벌이던 중 1920년 9월 5일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921년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후 추교철은 일제 강점기 동안 갑종 요시찰 인물로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여 주로 종친회 활동에 열중하였다. 추교철추재도(秋載道)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으며, 해방 후 1951년 2월 1일 “완전한 자유 평화가 오는 날 유명(幽明)에서나마 춤을 추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묘소]

추교철의 묘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삼산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추교철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9년에는 부여군에서 추교철이 태어나고 거주한 외산면 삼산리를 ‘애국지사 마을’로 선정하여 표지석을 설립하였다.

[참고문헌]
  • 『부여군지』 (부여군지편찬위원회, 2003)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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