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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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鳳萬 |
영어공식명칭 | Shin Bongma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민석 |
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신봉만 박일복 의진 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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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9월 30일 - 신봉만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13년 - 신봉만 은사령으로 출옥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신봉만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규암리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
성격 | 의병|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부여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신봉만(申鳳萬)[?~?]은 부여군 천을면 규암리[현 규암면 규암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박일복 의진에 가담하였다.
박일복(朴一福)은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이 시작되자 1907년 9월 신도여(申道汝)의 의진에 가담하였고, 11월경에는 오갑진(吳甲辰)과 함께 홍산 읍내에 거주하는 밀정 함성덕(咸聖德)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이후 박일복은 28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1908년 6월경까지 충남 보령·남포·홍주·청양·홍산·정산·부여 등지에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신봉만도 김금실(金錦實) 등과 함께 부여군 성도면 신촌리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부일 협력자들을 처단하는 등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신봉만은 1908년 9월 30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3년 은사령(恩赦令)에 의하여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신봉만의 공적을 기려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