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969
한자 李萬三
영어공식명칭 Lee Mansa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3년연표보기 - 이만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08년 2월 8일연표보기 - 이만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이만삼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활동지 부여 - 충청남도 부여군
성격 의병|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정미칠조약이 체결된 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국권 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맞서 싸웠다. 1907년 8월부터는 강제 해산된 군인들이 의진에 직접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참여 계층도 유림, 농민, 포수, 해산 군인뿐만 아니라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까지도 대거 참여하여 국민 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의병 전쟁은 초기에는 전기 의병과 같은 대회전 방식이었으나 1906년 말부터는 소부대에 의한 유격전 방식으로 바뀌어 갔다. 따라서 의병 전쟁의 거점 또한 향교 같은 곳이 아니라 읍성 또는 산성이었고 후에 유격전으로 바뀌면서는 점차 산악으로 이동하였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나갔으며 전국 곳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1907년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전사자가 10만 명으로 알려질 정도로 국내 의병 항쟁은 처절하였다.

[활동 사항]

이만삼(李萬三)[?~1908]의 출신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186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을사늑약 체결 후 항일 의진에 참여하였고, 1908년 2월 부여 등지에서 활동하던 중 일본군에게 사로잡히자 부여군 초촌면의 산중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만삼의 공적을 기려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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