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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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彰烈祠 |
영어공식명칭 | Changyeol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남로 78[금사리 51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성 |
건립 시기/일시 | 1717년 - 창렬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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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21년 - 창렬사 사액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59년 - 창렬사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1년 - 창렬사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2월 19일 - 창렬사 충청남도 기념물 제22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7년 - 창렬사 보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창렬사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창렬사 -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남로 78[금사리 519] |
성격 | 사당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사당]|3칸[묘문]|5칸[도해각]|3칸[정문] |
측면 칸수 | 3칸[사당]|1칸[묘문]|2칸[도해각]|1칸[정문] |
소유자 | 종중 |
관리자 | 부여군유림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 있는 삼학사를 모신 사당.
[개설]
창렬사(彰烈祠)는 병자호란 때 삼학사인 임계(林溪) 윤집(尹集)[1606~1637], 화포(花浦) 홍익한(洪翼漢)[1586~1637], 추담(秋潭) 오달제(吳達濟)[1609~1637]를 모신 사당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였던 삼학사는 인조가 청과 화의하자 척화론자로 몰려 청나라에 잡혀갔다.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심양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된 윤집은 시호가 충정(忠貞)이고, 홍익한도 영의정에 추증되었는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오달제도 영의정에 추증되었는데 시호는 충열(忠烈)이다. 1717년(숙종 43) 숙종이 온양에 행차하였을 때 충청도 유생 이덕함(李德涵) 등이 사우 건립을 상소하였다. 숙종은 대의명분을 세우고 충절을 장려한다는 뜻으로 충청도 감사에게 윤집의 의관이 묻혀 있는 홍산에 사당을 건립하도록 명하였다. 1721년(경종 1) ‘창렬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 때에도 충절을 제향하는 곳이라 하여 보존되었다. 창렬사는 1979년 12월 1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창렬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남로 78[금사리 519]에 있다. 북쪽으로 구룡천이 흐른다.
[변천]
창렬사는 1717년 건립되었고 1759년 중수되었다. 1921년 장의 김여재(金汝宰) 등이 다시 중수하였고, 2007년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다.
[형태]
창렬사는 사당, 묘문, 강당, 정문이 동남향으로 일직선상으로 배치된 전학후묘식 형태이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맞배지붕 건물이고, 묘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삼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강당인 도해각(蹈海閣)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학 공간과 숙사로 사용되었다. 도해각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된 평삼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현황]
창렬사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창렬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에도 보존될 정도로 중요한 사당이며, 삼학사의 충절과 죽음을 기리는 공간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