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필 장군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64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3월 13일 - 「유금필 장군 이야기」 부여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여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임천 유태사 묘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군사리 산1-1]지도보기
채록지 오량리 -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오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
주요 등장 인물 유금필
모티프 유형 역사 인물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유금필 장군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유금필 장군 이야기」는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고려의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941]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유금필은 역사적으로 고려의 개국공신이나 「유금필 장군 이야기」에서는 백제 장군으로 전승된다. 유금필의 사당인 임천 유태사 묘는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3년 3월 13일 부여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여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오량리에서 마을 주민이 구술한 내용이 채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

「유금필 장군 이야기」는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다양한 설화가 전하고 있다. 그중 부여군 양화면 일대에서 전하는 「유금필 장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 임천군에 명장으로 유명한 유 장군이 살았다. 어느 날 안개가 짙은 때에 당나라군이 쳐들어왔다. 임천군으로 오던 적은 임천군을 공격하지 않고 지나쳐서 부여로 바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이후 느닷없이 뒤에서 적에게 공격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적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이 장군의 이름이 유금필이다.

한편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서 전하는 「유금필 장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백제가 항복할 때 유금필 장군과 부하 3만 명은 나라가 패망하자 자결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벼슬아치가 말을 타고 사당 앞을 지나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화가 난 벼슬아치는 사당의 목상을 망가트려 버렸다. 그날 밤 벼슬아치의 꿈에 유금필이 나타나 목상을 원래대로 해 놓으라 전하였다. 그렇지만 그 벼슬아치는 유금필의 말을 무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벼슬아치의 큰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었다. 이후 벼슬아치의 꿈에 다시 유금필이 나타나 원래대로 해 놓으라 하였다. 벼슬아치는 이번에도 역시 유금필의 말을 무시하였다. 그렇게 유금필의 말을 거절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벼슬아치의 둘째 아들도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벼슬아치는 하는 수 없이 유금필의 말대로 하였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유금필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있어 활약을 한 인물이다. 비록 유금필은 후백제를 멸망시켰던 인물이지만 임천군의 사람들이 나라의 패망에 전염병과 흉년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므로 자신의 군사를 위한 군량미를 나누어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휼해 주었다고 전한다. 흉년이 지나고 임천 지역의 사람들이 장군의 공을 잊지 않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야기가 구비전승되는 과정에서 유금필이라는 인물이 당나라가 백제를 침략하였을 때 활약한 백제의 장수로 변모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부여 지역에서 전하는 인물 설화에 대하여 백제 출신의 장수와 관련된 이야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이처럼 부여 지역의 구비전승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역성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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