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4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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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rother And Sister Rock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2년 - 「남매바위」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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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남매바위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
채록지 | 신성리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누이|남동생|호랑이|신라군|당나라군 |
모티프 유형 | 오누이 힘내기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에서 남매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남매바위」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 성재산에 있는 남매바위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전반부는 백제 출신의 남매가 내기를 하는 내용이나, 후반부는 나당 연합군(羅唐 聯合軍)에 남매가 합심하여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남매바위」는 1992년 한민에서 발행한 『여기가 부여다』에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에서 마을 주민이 구술한 내용이 채록된 것이다. 채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
옛날에 한 남매가 살고 있었다. 누이는 열여섯 살이고 동생은 열세 살인데, 둘 다 기운이 장사였다. 남매는 굴속에서 사는 호랑이와 함께 어울려 놀았다. 호랑이 새끼를 한 마리씩 안고 나와 뛰놀기도 하고 어미 호랑이와도 함께 누워 쉬다 오기도 하였다. 하루는 남매가 산토끼 다섯 마리를 잡아서 호랑이에게 세 마리를 주고, 남매는 각각 한 마리씩 불에 구워 요기하였다. 밤늦게 집에 돌아가니 부모님이 남매를 꾸중하고, 신라군이 백제에 싸움을 걸어온다면서 앞일에 대하여 걱정하였다. 아버지가 잠들자 남매는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와 대화하였다. 동생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싸움터에 나갈 생각을 하였으나, 누이는 싸움터에 나가기에는 너무 어리다며 동생을 말렸다. 그러자 동생이 누나에게 내기를 제안하였다. 자신은 군사로서 적군 100명을 무찌르고 올 테니, 누이는 호랑이굴이 있는 산에 성을 쌓으라고 하면서, 누가 먼저 해내는지 보자고 하였다.
내기를 시작한 지 단 열흘 만에 누이는 성문에 돌 하나만 두면 완성될 정도로 성벽을 다 쌓았다. 누이는 동생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면 성벽을 완성할 생각이었지만 동생은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그러던 어느 날 밤에 동생이 눈 한쪽을 잃고 다리를 절며 돌아왔다. 동생은 누이에게 신라군 100명을 무찌르기는 하였으나 몸이 성하지 않으니 자신이 내기에서 졌다고 말하였다. 누이는 다친 동생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때마침 신라군이 육지로 쳐들어오고 당나라군은 강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매는 호랑이로 적들을 유인하여 죽일 생각에 호랑이굴로 달려갔다. 그리고 호랑이들을 데리고 돌아와 성벽을 굳건히 하였다.
남매가 당나라군을 잡기 위하여 호랑이들을 강변에 두자, 당나라군이 화살을 날리며 호랑이들을 쫓아오기 시작하였다. 남매와 호랑이는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성리의 성재산으로 적을 유인한 뒤, 성으로 올라오는 적에게 돌을 굴렸다. 그러나 당나라군의 수가 너무 많아 결국 성문이 뚫렸고, 남매와 호랑이들은 성안에서 사력을 다하여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지금 성재산에는 누이가 만든 성문 터가 있으며 성문 안쪽에 남매바위가 있다. 남매바위 부근에는 네 개의 호랑이 바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남매와 함께 싸운 호랑이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하늘에서 내린 바위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남매바위」의 주된 모티프는 ‘오누이 힘내기’이다.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남매의 내기가 이야기에 주된 내용이지만, 결말에는 역사적 상황으로 인한 남매의 비극적인 죽음이 담겨 있다. 백제의 패망과 함께 뛰어난 인재를 잃은 당대인들의 슬픔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백제 유민으로서의 역사 의식이 잘 드러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