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 넝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487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3년 3월 13일 - 「고니 넝굴」 부여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여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신탑골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 지도보기
채록지 응평리 -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거창 신씨|대사
모티프 유형 권선징악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에서 ‘고니 넝굴’이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고니 넝굴」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 신탑골의 고니 넝굴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거창 신씨가 조상의 묘를 옮길 때 조상의 묘를 판 곳에서 고니가 날아 올랐다가 내려앉은 곳을 ‘고니 넝굴’이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고니 넝굴은 ‘고니 난 골’이라고도 불린다.

[채록/수집 상황]

「고니 넝굴」은 2003년 3월 13일 부여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부여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응평리에서 마을 주민이 구술한 내용이 채록되어 있다. 채록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용]

옛날 부여군 초촌면 신탑골에 거창 신씨(居昌 慎氏)가 살았다. 신탑골에는 총각봉과 색시봉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병풍날[평풍날]이 사이에 있어 두 봉우리가 서로 잘 쳐다보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거창 신씨는 두 봉우리 가운데에 있는 병풍날에 조상 묘를 쓰고 난 뒤 제주 목사로 부임받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제주 목사로 일하다 죄 없는 아전을 잘못하여 죽인 일이 있었다. 아전의 아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도망을 가서 산중에 숨어들었다.

시간이 흘러 대사가 된 아들은 풍수 공부를 많이 하였다. 대사가 신탑골에 와 보니, 남녀의 두 봉우리가 병풍날 때문에 서로 보일락 말락하였다. 어떻게 보면 보이고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으니 서로 얼마나 좋아하는 형국인지 알 수 있었다. 중간에 있는 거창 신씨의 묘는 만대 영화를 누릴 자리였다. 복수를 다짐하였던 대사는 그대로 둘 수 없어 사흘을 내리 굶으며 병풍날을 올라 다녔다.

어느 날 거창 신씨가 신탑골에서 고장을 할 때였다. 거창 신씨는 병풍날을 올라 다니는 대사를 보고는 하인에게 대사를 붙잡아 오라고 명령하였다. 하인이 대사를 붙잡아 오자, 대사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있어 밥을 굶고 병풍날을 다닌다고 말하였다. 거창 신씨가 무엇이 그리 안타까운지를 물었다. 그러자 대사는 거창 신씨 조상 묘의 위치가 한 금정만 위로 올려 쓰면 정승이 날 자리인데, 현재의 자리는 한 금정 내려 쓴 것이라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대사의 말을 들은 거창 신씨는 묘의 위치를 옮기기 위해 문중들을 모아 조상의 묘를 파게 되었다. 묘를 파니 묏자리에서 고니 한 쌍이 나와 다른 곳으로 날아가 앉았다.

이때 고니가 날아가 앉았던 자리가 고니 넝굴[고니 난 골]이다. 이후 용인 이씨(龍仁 李氏)가 거창 신씨가 묘를 판 곳에 조상의 묘를 써서 잘되었다. 거창 신씨는 뒤에 손이 몇 집 살긴 하였으나, 조상의 묘를 대사의 말처럼 올려 써서 세거 성씨로서의 지위까지 내주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고니 넝굴」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 신탑골의 주변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주요 모티프는 한국 전통 사회에 일반화되어 있던 ‘풍수를 통한 보복’이다. 또한 ‘총각봉’과 ‘색시봉’이라는 지명을 소재로 하여 지역 전설로서의 특징을 보여 준다고 분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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