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496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담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74년 5월 1일 - 「금강사지의 신털이봉」 『한국지명총람』4-충남편에 「신터리봉」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
---|---|
관련 지명 | 부여 금강사지 -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 |
성격 | 설화 |
모티프 유형 | 집단 노동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 부여 금강사지 부근의 신털이봉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금강사지의 신털이봉」은 부여 금강사지(扶餘 金剛寺址) 부근의 신털이봉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신털이봉’이라는 지명과 전설은 과거 집단 노동과 큰 연관이 있다. 부여 금강사지의 경우 비교적 다른 지역 사찰에 비하여 규모가 작은 편이기는 하여도, 약 8,000평[약 26,446㎡]에 이르는 규모여서 대규모 집단 노동의 모습이 전설로 변모하여 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금강사지의 신털이봉」은 1974년 5월 1일 한글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지명총람』4-충남편에 「신터리봉」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금공리 부여 금강사지 동쪽에 있는 낮은 산을 신털이봉[신터리봉]이라고 한다. 옛날 백제 시대에 금강사라는 절을 짓는데, 절의 규모가 굉장히 컸다고 한다. 금강사를 짓기 위하여 일하던 일꾼들이 신발에 붙은 흙을 한곳에서 털었는데, 일꾼들이 턴 흙이 모여 봉우리를 이루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금강사지의 신털이봉」의 경우 ‘집단 노동’에 대한 모티프를 담고 있다. ‘신털이봉’이나 ’신털바위’ 등은 여러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지명이며, 관련 설화도 대체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신털이봉과 같은 지명은 대규모의 성을 쌓거나 거대한 건물을 세우는 등 대단위 노동의 장소에 수반되는 특성을 보인다. 당시 노동의 모습을 고려하면 동원된 사람들이 실제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동작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흙을 터는 동작을 대규모의 인원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던 것에서 과장되어 전설이 만들어져 전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울러 대규모의 사람들이 동원된 공사의 결과물에 대한 당대인들의 존엄성을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