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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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1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주권 회복과 민족 생존권 확보를 위해 항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내재적 역량이 결집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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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 1919년 3·1 운동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침탈당한 주권 회복과 민족 생존권 확보를 위해 항쟁한 우리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다. 또한 3·1 운동은 신분과 직업, 종교의 구별 없이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내재적 역량이 결집된 거족적인 민족 운동이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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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에 있는 감리교회. 대호지감리교회는 1954년 3월 5일에 기독교 대한 감리회 호서 지방 천의 구역 대호지 기도처로 인정되면서 대호지감리교회가 공식 출범하고, 제1대 담임자로 장명활 전도사가 파송되었다. 대호지감리교회는 대호지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면내 지역 주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대호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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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리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동 간척지를 축조하기 이전에 바다 가운에 우뚝 솟은 섬에서 복숭아 오얏나무가 다수 자생하여 봄철에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루었다. 이에 복숭아 도(桃) 자 오얏 이(李) 자를 따서 ‘도리섬’이라고 칭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상도, 하도, 전동, 애동을 통합하여 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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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있었던 근대 학교. 도호의숙의 교육 목표는 애국·충절을 바탕으로 한 민족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 강당(講堂)골에 있던 도호의숙(桃湖義塾)은 남이흥(南以興)[1576~1627] 장군의 후손인 의령 남씨(宜寧男氏) 종중에서 그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종숙(宗塾)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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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해 마을 단위 등으로 만든 조직.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두레는 모내기, 김매기 혹은 길쌈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마을 단위 혹은 부락이나 소규모 단체로 결성되어 진행되어 왔다. 당진의 농업은 벼농사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적기에 물을 공급하고 많은 노동력이 일시에 투입되어야 했다. 벼농사의 특성상 단체 노동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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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적서리 방구바위 아래에 있는 나루. 방구바위 나루터는 정미면에서 발원하여 북류하여 가로림만으로 흘러들던 염솔천의 최하류에 있던 나루이며, 이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가로림만을 가로 질러서 서산시 대산읍과 지곡면으로 건너다녔다. 대호지면은 당진시의 서부 가로림만에 있는 면이다. 원래 남쪽을 제외한 삼면은 바다와 접한 지역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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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이 시조이고 김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부안김씨(扶安金氏)의 시조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 태자 김일(金鎰)[?~?]이다. 본격적인 가문의 발전은 4세손 김경수(金景修), 9세손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1211~1278]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대호지면 두산리에 세거지를 형성한 인물은 20세손 김선(金瑄)[?~?]이다. 김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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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 있는 남유, 남이흥 양세충신 사적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1길73-54[도이리 373-1]에 있는 불천위 사당(不遷位祠堂)인 충장사(忠壯祠)는 남이흥 장군의 위패 신주가 모셔진 사당이다. 충장사는 1667년(현종 8)에 세워진 건물이나 오랜 세월로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1968년 내부 공사를 하였다. 사당 주위는 담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