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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014
한자 儒敎
영어공식명칭 Confucianism
이칭/별칭 유학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고대/삼국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집필자 장수덕

[정의]

중국 춘추 시대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

[개설]

유교(儒敎)는 공자(孔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유학(儒學)이란 말과 함께 통용된다. 유교는 인(仁)을 근본으로 하며,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덕목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경전으로 한다.

공자는 기원전 557년 노나라 곡부에서 탄생하였고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누구에게나 배움을 청하였고 난세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왕도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공자는 유교의 핵심 사상인 ‘인’을 인간의 본질이며 삶 그 자체라고 보았다. 공자는 ‘성(性)’이나 ‘리(理)’보다는 ‘도(道)’·‘직(直)’·‘덕(德)’·‘충(忠)’·‘신(信)’·‘의(義)’ 등의 말들을 자주 하였으나 공자의 사상은 살아생전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다만 증자(曾子),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孟子)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고 한무제(漢武帝) 때에 이르러 비로소 중국 사상의 중심이 되었다.

이후 당나라를 거치고 송나라에 이르러 주희(朱熹)에 의하여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하였다. 성리학은 우주 만물의 본성을 탐구하여 인간의 심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명나라의 양명학(陽明學)과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에 이미 유교가 전래되어 학문과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이른바 고구려의 태학(太學)이나 백제의 박사 제도(博士制度), 신라의 설총(薛聰)최치원(崔致遠)에 관련된 내용이 그것이다.

고려 시대에는 국자감이나 구재 학당, 해동공자 최충(崔沖)과 관련이 있다. 충렬왕(忠烈王)안향(安珦)에 의해 주자학(朱子學)이 유입되어 고려 말 등장한 신진사대부들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 정통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율곡(栗谷) 이이(李珥) 등 걸출한 학자들이 배출되어 조선 성리학을 완성하였다.

[당진의 유도회]

현재 우리나라에는 유교의 총본산인 성균관이 있고, 각 시도에는 향교가 있으며, 유림의 모임인 재단 법인 유도회가 있다. 당진에는 당진 유도회면천 유도회가 있다. 유교와 관련한 문화재로는 당진과 면천 두 곳에 향교가 남아 있다. 현재까지는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으며, 유림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거점이 되고 있다. 현재 당진 유림들은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과 윤리 문화를 재건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당진 유림들의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봄가을로 석전대제(釋奠大祭)와 공부자 탄강 기념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유림 신문도 발간하고, 명륜 보감(明倫寶鑑)도 보급하고 있으며, 지방의 향토 문화 발전과 전통 윤리의 선양을 위해 명륜회(明倫會), 숭덕회(崇德會), 고전 연구회(古典硏鑽會) 등도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 교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여 충효 교육을 실시하고 연서반(硏書班), 경전반(經典班) 등을 운영하여 서예와 경전 지도도 함께하고 있다.

[당진의 향교]

[당진 향교]

『당진군지』(1983)에 의하면 당진 향교(唐津鄕校)는 1407년(태종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다만 성종 때에 석전대제를 봉행하였다는 기록과 향교에서 어린 자제들을 교수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당진 향교는 지금까지 여러 번 중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내삼문(內三門)·제기고(祭器庫) 등이 남아 있다. 당진 향교 대성전에는 5성(五聖)과 송조 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 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부터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로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당진 향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 전적으로는 필사본을 비롯하여 28종 56책이 보관되어 있다. 1975년부터는 유림 친목회가 중심이 되어 매년 하기 한문 강습을 실시하고 있고, 석전 봉행 후 지방 효열(孝烈)에 대한 표창을 실시하고 있다.

[면천 향교]

면천 향교(沔川鄕校)는 1392년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사료나 문헌이 남아 있다. 1366년(공민왕 5)에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역시 분명하지 않다. 다만 1592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훼손되어 보수되었다는 기록과 1966년에 대성전과 동재를 보수한 기록이 있으며, 현재는 대성전·동재·서재·명륜당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에는 5성과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 등 당진 향교와 똑 같은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지금도 면천 향교에서는 봄·가을로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의의]

유교 사상의 뿌리는 중국 춘추 시대에 있었고 삼국 시대에 오경사상(五經思想)을 중심으로 하여 정치 이념이 되었으며, 국민을 교육하는 원리가 되었다. 원래 유교에서는 효(孝)의 관념을 중시하거니와 삼국 시대에 국가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그 기반이 확고해졌을 뿐 아니라, 국력을 신장하고 국가를 수호한다는 필요성에 의하여 효와 충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었다. 삼국 시대에 받아들여서 국민의 보편적 정신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특히 고려 후기에 성리학이 전래가 되고서 조선에 이르러서는 통치 이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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