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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15
한자 唐津鄕校
영어공식명칭 Dangjin Neo-Confucian School
이칭/별칭 향학,학관,재관,교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수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07년연표보기 - 당진 향교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500년 - 당진 향교 석전대제 거행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8년 - 당진 향교 당성 학원 설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5년 - 당진 향교 대성전 및 동·서재와 장벽 수리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 - 당진 향교 석전 석축 보수 및 단청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4년 - 당진 향교 유림 회관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6년 - 당진 향교 유림 회관 별관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7년 - 당진 향교 대성전 및 명륜당 개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9년 - 당진 향교 명륜당 동량 개체 및 단청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1년 - 당진 향교 대성전 연목 교체 및 번와 보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2월 23일연표보기 - 당진 향교 충청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
현 소재지 당진 향교 - 충청남도 당진시 교동2길 33-18[읍내동 215-1]지도보기
성격 교육 기관
양식 전통 기와집 맞배지붕
정면 칸수 [대성전 6간]|동무 3간]|[서무 3간]|[명륜당 4간]|[동재 6간]|[서재 6간]|[마구 1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중등 교육 기관.

[개설]

당진 향교는 조선 전기에 설립되어 당진 지역에서 중등 교육을 담당하던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다. 향교는 서당에서 기초 교육을 수학한 양반의 자제들이 입학하여 수학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향교에서는 선현의 제사를 받들고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조선 후기 등장한 서원과 함께 지방 교육의 중추를 담당하였다.

[위치]

당진 향교는 충청남도 당진시 교동2길 33-18[읍내동 215-1]에 있다.

[변천]

『당진군지』(1983)에 따르면, 당진 향교는 1407년(태종 7)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 1500년(성종 31)에 석전대제를 봉행했다는 기록은 나와 있어 실제로 건립된 시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느티나무 5주가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대성전 6간, 동무와 서무 각 3간, 명륜당 4간, 마구 1간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 마구간은 남아 있지 않다. 1918년에는 향교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져 지역 유지들과 문묘 유지계의 도움으로 묘답을 구입하고 당성 학원을 건립하여 후진 교육을 하는 등 명맥을 이어 오기도 하였다.

1945년 당진 향교 대성전 및 동·서재와 장벽을 수리했다. 1981년 당진 향교 석전 석축 보수 및 단청을 했다. 1986년 당진 향교 유림 회관 별관을 건립했다. 1987년 대성전 및 명륜당을 개수했다. 1989년 명륜당 동량 개체 및 단청을 했다. 1991년 대성전 연목 교체 및 번와 보수를 했다. 1997년 12월 23일에 당진 향교가 충청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당진 향교의 건물은 목조 기와집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담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속 건물인 유림 회관과 유림 회관 별관은 따로 있다.

[현황]

일제 강점기에 향교의 교육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해방 이후 현재까지 시설의 유지와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뜻있는 지역의 유림이 앞장서서 상고회[후에 연서반]를 조직하고 서예를 지도하는 등 헌신적으로 교화 사업에 앞장을 서 왔고, 1984년 유림 회관까지 건립하여 재정을 튼실히 하고 경전반, 고전 연찬회를 조직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재 유림은 아동반을 설치하여 『명륜교감』을 가르치기도 하고 각급 학교에 적극적으로 출강하여 충효 교실을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당진 향교는 초기 묘답에서 나오는 일부 소득과 국비를 지원받아 운영하였으나 늘 부족하였다. 따라서 당진 유림은 개별적으로 돈을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향교를 유지, 보수, 관리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당진의 유림은 일제 통치하에도 문묘 유지계를 조직하고 묘답을 사들이며 필사적으로 향교를 지켜내려 노력하였다. 지금도 전교 이하 의전 수석 장의 등이 당진 향교의 운영과 발전을 위해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이를 뒷바침할 유도회 지회를 각 읍면에 설치하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