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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0497
한자 城東山城
영어공식명칭 Seongdongsan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성동산 일대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학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삼국 시대 - 성동산성 건립 추정[백제식 토축 산성]
폐지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동학 농민 혁명 이후 폐성
소재지 성동산성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성동산 일대지도보기
성격 산성|토성
지정 면적 둘레 1㎞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 토성.

[변천]

성동산성(城東山城)은 삼국 시대 백제 토성으로, 산 능선을 따라 퇴뫼식으로 토축하여 성벽을 쌓은 산성이다. 백제 시기에는 합덕 지방의 치성(雉城)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동산성은 후백제 견훤이 축조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합덕을 차지하는 세력이 전체적인 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성동산성합덕제와 함께 후백제 견훤과 고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결국 고려가 합덕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성동산성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은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에 관한 것이다. 합덕의 농민들이 동학 농민 혁명 과정에서 기포(起包)[동학 농민 운동 때 농민 등이 동학의 조직인 포(包)를 중심으로 하여 봉기]하여 합덕제 인근에 있는 소들성에 주둔하게 되자, 홍주 목사 이승우성동산성에 홍주 관군을 파견하여 합덕의 동학 농민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때 전투는 6일간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홍양기사』에는 당시의 전투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성동산성을 비롯한 주변에는 당시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동산성의 성벽은 동학 농민 혁명 당시 홍주 목사 이승우가 동학 농민군과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개축한 토성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홍주 관군의 주둔지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위치]

성동산성의 위치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 성동산 일대이며 둘레가 1㎞ 정도 되는 큰 성이다.

[현황]

성동산성성동산 능선을 따라 토축된 산성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고 방치되는 형편이다.

[의의와 평가]

성동산성합덕제와 함께 후백제 견훤과 관련한 전설이 깃든 곳이고, 근대에는 동학 농민 혁명과 관련한 농민들이 혁명 의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작은 산성이지만 매 시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던 것은 성동산성이 있는 합덕 지방이 가지는 지리적·역사적 위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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