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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401499
한자 合德天主敎交友村
이칭/별칭 구합덕,합덕리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천주교 신앙 공동체 마을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 있는 천주교 신앙 공동체 마을.

[개설]

합덕천주교교우촌합덕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앙 공동체 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 속하는데 '소들강문'이라 불리는 평야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합덕제[합덕 방죽]가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움직임은 오늘날에도 계속되어 합덕리 마을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신앙의 순례지로,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관광의 명소로 인식되고 있다. 합덕리에는 당진시에서 운영하는 '합덕 수리 민속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한때 없어졌던 '합덕제'가 복원되어 농경 문화와 생태 환경의 학습 및 체험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명칭 유래]

합덕천주교교우촌은 1898년 합덕 성당합덕리로 이전한 이후 서서히 천주교 신자 마을로 바뀌면서 생겨난 명칭이다.

[형성 및 변천]

합덕천주교교우촌은 본래부터 천주교 교우촌은 아니었다. 주로 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민들로 구성된 마을로, 1898년까지는 천주교 신자들이 2~3가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양촌[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있던 성당이 1898년 옮겨오면서 합덕리는 서서히 교우촌으로 변모하였다. 외지의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상의 이유로 이주해 오고, 그들에 의해 선교 활동이 이루어져 마을 사람 대부분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합덕 성당합덕리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조선 시대에는 지체 높은 양반이 사는 기와집이 있었다. 수탈을 일삼던 그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으로 축출당하여 빈터로 남아 있는 것을 천주교회에서 매입하여 성당이 세워질 수 있었다. 합덕 성당 초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기와집 성당이 있었으나 1929년 새 성당이 지어지면서 합덕리는 크게 변모하였다. 수천 명의 신자를 가진 합덕 성당 본래의 기능과 더불어 평야 지대 어디에서도 보이는 성당으로 말미암아 내적, 외적으로 중심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4년 선교 200주년을 맞으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한하고,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 시성식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 역사가 크게 부각되자 합덕천주교교우촌도 주목을 받았다. 합덕리 주변 일대가 조선 시대 가장 융성했던 내포 천주교회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수많은 신자들이 합덕 성당으로 순례를 오고, 특히 여름철에는 도보 성지 순례의 기착지가 되었다.

[자연환경]

합덕천주교교우촌은 '소들강문'이라 불리는 평야 지대의 얕은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평야 지대에 용수를 공급하던 합덕제[합덕 방죽]가 마을 바깥쪽에 자리하고 있다.

[현황]

합덕천주교교우촌 마을에서 가장 높은 구릉에 1929년에 건립한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성당은 1998년 충청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성당 옆에 당진시에서 운영하는 '합덕 수리 민속 박물관'이 있으며, 과거 농업용수를 보급하던 합덕제가 복원되어 농경 문화와 생태 환경 학습을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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