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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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녹간마을 은행나무,주암리 은행나무 |
분야 | 지리/동식물 |
유형 | 식물/보호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148-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창기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538년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식재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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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지정 일시 | 1982년 11월 9일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20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변경 지정 |
소재지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 148-1 |
학명 | Ginkgo biloba |
생물학적 분류 |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은행나무과 |
수령 | 1,500년 |
보호수 지정 번호 | 천연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는 수령 1,500년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개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며,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열매가 살구[肉杏]와 비슷하고 은빛이 난다 하여 은행(銀杏)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월경부터 익기 시작하는 열매는 핵과(核果)로 구형이며, 황색의 종의는 몹시 거북한 악취가 나고 체액이 피부에 접촉하게 되면 심한 피부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함부로 베면 재앙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이다.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1982년 11월 9일 천연기념물 제32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천연기념물로 변경되었다.
[형태]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높이 25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 9.2m로서 지상 2m 정도에서 가지가 갈라지기 시작하여 동서로 29.25m, 남북으로 30m 정도 퍼져 있다. 수령은 약 1,5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백제 성왕 재위기인 538년(성왕 16)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당시 좌평 맹씨(孟氏)가 심었다고 전하여진다.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백제와 신라가 망할 때, 그리고 고려와 조선이 망할 때마다 칡넝쿨이 나무를 감싸고 올라가 나라의 멸망을 알렸다고 전하여진다. 또한 고려 말에 부여군 은산면 각대리에 있었던 숭각사의 주지가 암자를 중수할 때 대들보로 쓰기 위하여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의 큰 가지 하나를 베어 갔다고 한다. 그런데 숭각사의 주지는 절로 돌아가는 길에 급사하였으며, 곧 사찰도 폐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1894년에는 동편의 큰 가지가 부러진 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고, 1906년에는 서쪽의 가지가 부러진 후 의병이 봉기하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1910년 소 돌림병이 돌 때 마을이 무사하여, 인근 마을에서 소떼를 몰고 와 은행나무를 한 바퀴 도는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전하여 오는 전설들에서 알 수 있듯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영험한 나무이자 마을의 신령한 나무로 보호되어 왔다. 또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현황]
2022년 현재 주암리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 2일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여 나무에 제를 올리는데, 주암리 행단제(珠岩里 杏壇祭)라고 한다. 또한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는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의 녹간마을에 있어 ‘녹간마을 은행나무’라고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