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22
한자 扶餘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부여지』 부여군청에서 간행
간행 시기/일시 1929년 3월 15일 - 『부여지』 부여군청에서 발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저자 부여군청
편자 홍한표
권책 5권 2책
규격 19.8㎝[가로]|17.6㎝[세로]

[정의]

1929년 충청남도 부여군청에서 간행한 부여군지.

[개설]

『부여지(扶餘誌)』는 1929년 부여군청에서 부여군의 지역 정보를 모두 수집하여 정리하고 간행한 읍지류이다.

[저자]

『부여지』의 발행 겸 저작자는 부여군청이다.

[편찬/간행 경위]

『부여지』는 간행 경위는 당시 부여군수 홍한표(洪漢杓)가 작성한 서문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부여군은 조선 시대의 부여현, 홍산현, 임천군, 석성현이 통합되어 만들어진 행정 구역이었다. 그런데 옛 읍지를 모아 보니 모두 제각각이어서 하나로 모아 정리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별도로 한 부서를 만들어서 관장하게 하고 『부여지』를 간행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형태/서지]

『부여지』의 크기는 19.8㎝, 세로 17.6㎝이며, 인쇄본이다. 2책으로 건(乾)과 곤(坤)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모두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지 처음에는 부여군 지도를 첨부하였다.

[구성/내용]

『부여지』 1책에는 지군(知郡) 홍한표(洪漢杓)가 작성한 서문을 비롯하여 부여군 지도와 목차, 그리고 원부여현(元扶餘縣)과 원홍산현(元鴻山縣)의 읍지가 수록되어 있다. 2책에는 원임천군(元林川郡)과 원석성군(元石城縣)의 읍지, 폐합된 이후의 부여군 읍지가 수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 홍산현임천군 전 영역과 석성현의 절반‚ 노성현·공주면의 일부가 부여현에 통합되어 부여군이 되었는데, 『부여지』는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기 이전에 작성된 각 군현의 읍지와 부여군으로 통폐합된 뒤 부여군의 읍지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1권은 옛 부여현의 정보를, 2권은 옛 홍산현의 정보를, 3권은 옛 임천군의 정보를, 4권은 옛 석성현의 정보를, 5권은 부여군으로 통합 이후의 정보를 싣고 있다.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기 이전에 작성된 읍지의 경우,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읍지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목차는 건치연혁(建置沿革)‚ 현명(縣名)‚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지(城址)‚ 방리(坊里)‚ 역원(驛院)‚ 교량(橋梁)‚ 제언(堤堰)‚ 공해(公廨)‚ 단묘(壇廟)‚ 창고(倉庫)‚ 사찰(寺刹)‚ 고적(古蹟)‚ 누정(樓亭)‚ 능묘(陵墓)‚ 형승(形勝)‚ 토산(土産)‚ 풍속(風俗)‚ 성씨(姓氏)‚ 인물(人物)‚ 한전(旱田)‚ 수전(水田)‚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군병(軍兵)‚ 봉름(俸廩)‚ 진공(進貢)‚ 제영(題詠)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부여군으로 통폐합된 이후 부여군 읍지의 목차는 연혁(沿革)‚ 위치경계광무(位置境界廣袤)‚ 지세급기후(地勢及氣候)‚ 군명(郡名)‚ 관직급기타직원(官職及其他職員)‚ 면리각방리거리급호수인구(面里各方里距離及戶數人口)‚ 풍속(風俗)‚ 성씨(姓氏)‚ 신관공해급기타(新官公廨及其他)‚ 사찰(寺刹)‚ 신사(神祠)‚ 창고(倉庫)‚ 명승고적(名勝古蹟)‚ 누정관(樓亭館)‚ 능묘(陵墓)‚ 형승(形勝)‚ 도로(道路)‚ 교량부차량(橋梁附車輛)‚ 하천(河川)‚ 수리조합(水利組合)‚ 인물(人物)‚ 민유과세지(民有課稅地)‚ 민유비과세지(民有非課稅地)‚ 국유지(國有地)‚ 역둔토(驛屯土)‚ 광구주류(鑛區酒類)‚ 각세부과액(各稅賦課額)‚ 관공서급기타단체세입출일개년예산(官公署及其他團體歲入出一個年豫算)‚ 교육(敎育)[내지인교육(內地人敎育)‚ 조선인교육(朝鮮人敎育)]‚ 종교(宗敎)[불교(佛敎)‚ 기독교(基督敎)‚ 천주교(天主敎)‚ 시천교(侍天敎)‚ 천도교(天道敎)]‚ 권업(勸業)[농산물(農産物)‚ 임야(林野)‚ 잠업(蠶業)‚ 축산급축산물산액(畜産及畜産物産額)‚ 공산물(工産物)‚ 시장(市場)‚ 수산(水産)]‚ 경비위생(警備衛生)‚ 의약(醫藥)‚ 변소(便所)‚ 병사(病舍)‚ 묘지(墓地)‚ 금융(金融)‚ 각종회원(各種會員)[진흥회(振興會)‚ 청년회(靑年會)‚ 적십자사(赤十字社)‚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재향군인회(在鄕軍人會)‚ 충남저포주식회사(忠南苧布株式會社)‚ 제영(題詠) 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에 유지형(兪致亨)의 부여지발문(扶餘誌跋文)을 수록하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여지』는 1914년 부여현, 홍산현, 임천군, 석성현의 각 군현들이 부여군으로 통합된 이후 부여군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정보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 『부여지』 (부여군청, 1929)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s://k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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