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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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頥吉 |
영어공식명칭 | Gwon Igil |
이칭/별칭 | 자순(子順)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에 정려각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가계]
권이길(權頥吉)[1588~1627]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자순(子順)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권용(權鎔)이고, 할아버지는 권대훈(權大勲)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권곤(權鵾)이고, 어머니는 민영(閔韺)의 딸 여흥 민씨(驪興 閔氏)이다. 부인은 선전관 임정문(林挺門)의 딸 예천 임씨(醴泉 林氏)이고, 아들은 권희(權曦)이다.
[활동 사항]
권이길은 1588년(선조 21) 2월 4일 부여에서 태어났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5년(인조 3) 호패청낭청을 거쳐 9월에는 평양판관(平壤判官)에 제수되었다. 평양판관으로 재임 중이던 1627년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삭주부사 이명길(李明吉), 좌척후장 정지한(鄭之罕), 파총 이충백(李忠伯)·정대익(鄭大翼)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황해도 순안(順安)의 치천원(穉川院)에서 후금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이후 후금 군대에 밀려 평양까지 후퇴하였고, 1627년 3월 5일 권이길은 평양성 보통문 앞에서 적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하였다.
권이길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부인 예천 임씨는 남장을 하고 평양성으로 달려가 권이길의 시신을 찾아낸 뒤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선영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묘소]
권이길의 묘소는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27년(인조 5) 12월 조정에서 권이길의 부모와 처자에게 미곡 2석과 태염(太鹽) 1석을 전하였다. 1681년(숙종 7) 2월 권이길에게 충신 정려가 내려졌고, 1817년(순조 17) 9월에는 부인 예천 임씨에게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