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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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頥吉 妻 醴泉 林氏 |
영어공식명칭 | Gwon Igil’s wife Yecheon Imss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출생 시기/일시 | 1594년 - 권이길 처 예천 임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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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72년 - 권이길 처 예천 임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17년 - 권이길 처 예천 임씨 열녀 정려를 하사받음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3년 - 권이길 처 예천 임씨 정려 이건 |
묘소|단소 | 권이길 처 예천 임씨 묘소 -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
사당|배향지 | 권이길 처 예천 임씨 정려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 산21-1 |
성격 | 열녀 |
성별 | 여성 |
본관 | 예천(醴泉)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정동리에 정려각이 있는 조선 후기의 열녀.
[가계]
권이길(權頥吉) 처 예천 임씨(醴泉 林氏)[1594~1672]는 선전관을 지낸 임정문(林挺門)의 딸이자 판관 임계형(林繼亨)의 증손녀이다. 남편 권이길[1588~1627]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동지중추부사 권곤(權鵾)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예천 임씨는 1594년(선조 27)에 태어나 부여 출신 권이길과 혼인하였다. 예천 임씨의 남편 권이길은 평양판관으로 재임 중이던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삭주부사 이명길(李明吉), 좌척후장 정지한(鄭之罕), 파총 이충백(李忠伯)·정대익(鄭大翼) 등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황해도 순안(順安)의 치천원(穉川院)에서 후금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이후 후금 군대에 밀려 평양까지 후퇴하였고, 1627년 3월 5일 권이길은 평양성 보통문 앞에서 적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하였다.
예천 임씨는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자 남장을 한 채 노비 두 명을 데리고 보통문 밖에서 남편의 시신을 찾아와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예천 임씨는 이후 정절을 지키다가 1672년(현종 13) 사망하였다.
[묘소]
권이길 처 예천 임씨의 묘소는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에 있다. 남편 권이길과의 합장묘이다.
[상훈과 추모]
권이길 처 예천 임씨 정려가 부여읍 정동리에 남아 있다. 『순조실록(純祖實錄)』에 따르면 부여의 많은 선비들이 상소를 올려 1817년(순조 17) 열녀 명정이 내려졌고, 묘소 아래에 정려가 건립되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정려가 무너지고 현판만 남아 내려오다가, 1973년 후손들이 지금의 부여읍 정동리에 정면 2칸의 정려를 세워 남편 권이길의 충신 명정과 함께 예천 임씨의 열녀 명정을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