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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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震 |
영어공식명칭 | Sang Jin |
이칭/별칭 | 기부(起夫),송현(松峴),향일당(嚮日堂),범허재(泛虛齋),성안(成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근호 |
출생 시기/일시 | 1493년 - 상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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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16년 - 상진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19년 - 상진 별시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26년 - 상진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 사행 |
활동 시기/일시 | 1534년 - 상진 강원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535년 - 상진 좌부승지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38년 - 상진 경기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539년 - 상진 형조판서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41년 - 상진 한성부판윤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43년 - 상진 병조판서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45년 - 상진 경상도관찰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549년 - 상진 우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51년 - 상진 좌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58년 - 상진 영의정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564년 - 상진 사망 |
출생지 | 합곡 -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 |
묘소|단소 | 상진 묘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명달로 45[방배동 1000-1] 상문고등학교 내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목천(木川) |
대표 관직 | 영의정 |
[정의]
조선 전기 부여 출신의 문신.
[가계]
상진(尙震)[1493~1564]의 본관은 목천(木川)이며,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향일당(嚮日堂)·범허재(泛虛齋) 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상영부(尙英孚)이고, 할아버지는 상효충(尙孝忠)이다. 아버지는 상보(尙甫)이고, 어머니는 김휘(金徽)의 딸 연안 김씨(延安 金氏)이다. 부인은 개산부수 이효지(李孝智)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활동 사항]
상진은 1493년(성종 24) 지금의 부여군 장암면 합곡리에서 태어났다. 1516년(중종 1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19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예문관의 검열과 봉교 및 예조좌랑을 지냈다. 이어 북평사를 지내고 1526년에는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세자시강원필선·사헌부장령·사간원헌납·홍문관교리·사헌부집의·홍문관응교·홍문관전한 등을 거쳐 사간원대사간과 홍문관부제학을 지냈으며, 1534년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상진은 1535년(중종 30) 동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가 되었고, 1536년에는 왕명을 받아 모화관(慕華館)에서 진행된 열무 때 군사를 지휘하였다. 1538년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가 1539년에 형조판서·한성부우윤을 역임하였다. 1541년 평안도관찰사와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1543년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 1545년(명종 1)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우참찬·병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병조판서 재임 시 변방의 수비 강화 대책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549년 상진은 우의정이 되었고, 이후 좌의정을 거쳐 1558년 영의정에 올랐다.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주도하여 불교의 양종(兩宗)[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을 다시 설치하려고 할 때 온건한 주장을 펼쳐 유생들의 지탄을 받았고, 황해도 평산(平山) 일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임꺽정의 난을 평정하기도 하였다. 상진은 1564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상진의 저술로는 시문집인 『범허정집(泛虛亭集)』이 있다.
[묘소]
상진의 묘소와 신도비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명달로 45[방배동 1000-1] 상문고등학교 내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