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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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澤雷 妻 東萊 鄭氏 |
영어공식명칭 | Jeong Taekroe’ wife Dongnae Jeong-ss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순영 |
[정의]
조선 후기 부여 지역의 열녀.
[가계]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아버지는 정사경(鄭思敬)이다. 사천현감을 지낸 정득열(鄭得說)의 아들 정택뢰(鄭澤雷)[1585~1619]와 혼인하여 하동 정씨(河東 鄭氏)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아들은 정천세(鄭千世)·정만세(鄭晩世)·정계세(鄭繼世)·정수세(鄭壽世)이다.
[활동 사항]
정택뢰 처 동래 정씨는 남편 정택뢰가 유배지에서 사망하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입관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할 생각이었으나 마음을 바꾸어 정성을 다하여 삼년상을 치렀으며, 이후 초상 때와 같이 매일 죽만 먹으며 살다가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동래 정씨의 행적은 『여지도서』, 『충청도읍지』 등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남편 정택뢰도 유배지에서 함께 기거하였던 어머니 진주 강씨(晉州 姜氏)가 사망하자 두 눈이 실명할 정도로 애통해하는 등 효심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713년(숙종 39) 남편 정택뢰가 효자 명정을 받을 때, 부인 동래 정씨는 열행에 따라 복호가 내려졌다. 그러다 유생들의 상언으로 1806년(순조 6) 열녀로 명정되었으며, 이때 아들 정천세도 효자로 명정되었다. 부여읍 관북리에 동래 정씨를 비롯하여 시아버지인 정득열, 남편 정택뢰, 아들 정천세 등 네 명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한 정려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