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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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改新敎 |
영어공식명칭 | Protestantism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태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 교회군.
[개설]
개신교(改新敎)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우리말로 번역한 말이다. 가톨릭과 대립하여 새로 분립된 교회군을 통칭한다.
기독교(基督敎), 즉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원자 혹은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신앙하는 종교이다. 크게 가톨릭교, 동방정교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 분리된 개신교로 구분할 수 있다. 모두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성경을 경전으로 하며, 신학의 차이와 전통의 수용 범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해석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는 미국에서 비롯된 침례교 교단의 동양선교회를 통하여 1896년에 처음으로 개신교 신앙이 전하여졌다. 오늘날 부여군 관내에는 180여 개의 개신교 교회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개신교]
우리나라 개신교는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 S. Maclay)에 의한 전도 활동을 공식적인 시작으로 본다. 1884년 6월 24일 내한한 맥클레이는 김옥균의 주선으로 고종을 만나 교육과 의료 활동을 허락받으면서, 간접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는 미국 북감리교회 소속의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직접적인 전도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편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언더우드(H. G. Underwood) 목사도 1885년에 입국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언더우드의 선교 활동을 기점으로 미국 남장로회, 캐나다 장로교회, 호주 장로교회 등 여러 교단이 앞다투어 조선으로 들어와 전도 활동을 벌였다.
초창기 한국 개신교는 19세기 미국 복음주의 신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교육과 의료, 사회 사업을 통한 교회의 전도 활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지역민의 근대 의식 성장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부여 지역 교회의 설립]
충청남도 부여 지역 최초의 개신교회는 1896년 8월에 폴링(E. C. Pauling)이 설립한 칠산교회이다. 폴링은 미국의 북침례교 독립 선교 단체인 ‘엘라싱기념선교회’에서 선교의 임무를 띠고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이다. 폴링은 1896년 2월 충청도에서 처음으로 강경에 침례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금강 수계를 통하여 긴밀하게 연결된 부여 지역에도 곧바로 복음을 전도하였다.
엘라싱기념선교회는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들이 교류가 빈번한 금강 변에 인접한 도시들을 주된 전도 대상으로 삼았으나 1901년 선교회의 재정 고갈로 선교사들이 철수하였다. 캐나다 출신의 독립 선교사 펜윅(M. C. Fenwick)에 의하여 교회 공동체가 유지되기는 하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남은 교인들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교단에서 신앙 활동을 이어 가기도 하였다.
침례교에 이어 장로교 교단의 전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장로교는 이미 1896년에 미국의 남장로교회 소속 군산 스테이션을 설립하고, 군산 스테이션을 거점으로 금강의 수계를 따라 왕래하며 인근의 공동체를 돌보면서 주변 지역의 전도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1898년 3월 10일 선교사 불(W. H. Bull)이 본래 칠산교회에 속하여 있던 교인들 51명에게 세례를 하여 주면서 공식적으로 장로교 공동체를 시작되었다. 초왕리교회[현 오량교회] 설립 이후 옥곡, 지석, 오덕 등의 공동체가 분립되었다. 초왕리교회부터 분리된 교회들은 충남 지역과 서해안 지역의 장로교회 전도에 교두보가 되었다.
감리교회는 침례교나 장로교보다 조금 더 늦게 부여 지역에 전파되었다. 최초의 감리교회는 1903년에 설립된 규암중앙감리교회로 감리교의 전파 역시 금강이 통로 역할을 하였다. 금강의 주요 나루 가운데 하나로 큰 장이 열리며 사람들의 교류가 활발하였던 규암은 일찍부터 다양한 교단들의 선교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부여 지역 감리교는 지역과의 연대를 통한 전도 활동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성결교회 역시 규암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 동양선교회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전국에서는 다섯 번째이자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으로 1912년에 규암전도관을 설립한 것이다. 곧이어 은산면과 홍산면에도 전도관이 세워졌고, 교인들의 수효가 점차 늘어났다. 오늘날 부여 관내에 성결교회는 33개가 분포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장로교회 85개, 감리교회 23개, 침례교회 37개,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2개, 나사렛교회 2개,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가 3개로 총 183개의 교회가 있다.
부여 지역은 금강의 교통로와 빈번한 인적 물적 교류를 기반으로 초기 개신교 선교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였고, 충청도와 전라도를 비롯하여 개신교회가 전국으로 퍼져 가는 데에 기여하였다.
[일제 강점기 부여 지역 교회의 항일 투쟁]
일제 강점기 부여 지역의 개신교 신도들은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청포교회는 1910년 선교사 해리슨 불을 교장으로 창영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창영학교 교사 엄창섭이 1919년 3월 10일 강경에서 3·1 운동을 주동하였다.
한편, 1940년대 부여 지역의 교회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1943년 은산교회의 손갑종 목사가 체포되었고, 교회는 강제 해산되었다. 이어 「치안유지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1943년 규암성결교회가 폐쇄되었고, 1942년 같은 이유로 칠산침례교회의 장석천 목사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고문 후유증으로 순교하였다. 1944년에는 신사 참배 거부로 칠산침례교회가 폐쇄되고 교회가 몰수되기도 하였다.
[현대의 부여 지역 교회들]
일제 강점기 이후 현재 부여 지역의 개신교 교회들은 183개로 장로교회, 감리교회, 성결교회, 침례교회 등 다양한 교파가 활동하고 있다.
부여의 개신교 교회들은 대체로 예배나 기도회, 성경학교, 선교 등의 기본적인 종교 활동과 더불어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