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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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정미면 지지. 『정미면지』는 정미면사무소와 정미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2년에 정미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편, 산업 경제 편, 문화 편, 성씨 인물 편, 문화재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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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출포리에 있는 경주이씨의 효부문. 경주이씨는 당진시 대호지면 출포리에 살던 김국진의 아내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잘 섬겨 벼슬길에 내보냈고, 가산을 크게 일으켰다. 하지만 남편은 소실을 얻어 가산을 탕진하였고, 병든 시부모는 끊임없이 경주이씨를 괴롭혔다. 그래도 경주이씨는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셨고, 효부문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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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도일(金道一)[1886~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김도일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아버지는 김규모,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이다. 김도일은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27번지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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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던 당진현의 공세미 보관 창고. 당진 북창(唐津北倉)은 조선 시대 당진현에서 관리하던 현물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이다. 『당진읍지』를 보면 당진현에는 읍창, 북창, 해창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진 북창은 조선 초기에 당진현의 북쪽에 설치되었던 조창으로 보관했던 공세미는 조운선을 통해 경창으로 옮겨 갔다. 당진 북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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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전개된 화서학파의 민족 운동. 화서학파(華西學派)는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인을 지칭한다. 한말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당진 지역 민족 운동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배경으로 화서학파와 연결된 성리학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표되는 한말의 성리학은 외세 침략에 적극적으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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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방(大防)들의 대(大) 자, 구운미(九雲美)의 운(雲) 자, 가지맥(枝山脈)의 산(山) 자를 따서 대운산리(大雲山里)라 하였다. 조선 시대 덕수 이씨(德水李氏) 육송공판서 이선부가 구운미가 운중 반월형(雲中半月形)으로 좋은 지대라 하여 정착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 세력인 육씨 300여 호가 그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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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조리에 한새울이란 자연 마을이 있는데 이곳의 지형이 풍수지리학적으로 금닭이 알을 품은 명당인 금계 포란형(金鷄抱卵形)이다. 성주 이씨인 진잠 현감 이필범의 묘가 있는데 이 묘의 주위 마을을 한새울이라 하였다. 한새울에서 한→크다[大], 새→조로 바뀌어 ‘대조(大鳥)’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또는 대야동의 '대' 자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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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한 법정면. ‘대호지’란 촌명은 지형이 바닷가로 길게 뻗어서 옆의 만이 호수처럼 생기고 곶을 이루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해미현 읍내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면(西面)이라 불리어 왔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호지면이라 하여 서산군(瑞山郡)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산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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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한 법정면. ‘대호지’란 촌명은 지형이 바닷가로 길게 뻗어서 옆의 만이 호수처럼 생기고 곶을 이루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원래 해미현 읍내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면(西面)이라 불리어 왔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호지면이라 하여 서산군(瑞山郡)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산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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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실(德實)에서 덕(德) 자와 말목에 해당되는 부락이란 뜻의 ‘마항(馬項)’에서 마(馬) 자를 따서 덕마리(德馬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덕곡리와 마항리 일부를 병합해 덕마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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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일제 말 해미장과 면천장의 중간 지점인 황소 고개 밑에서 장사꾼들이 황소에 덕석[소등에 덮는 방한재]을 입혔다는 덕석골이란 자연 마을의 덕(德) 자와 3상(三相)과 8판서(八判書)가 속출하였다는 삼상지평(三相地坪)이란 자연 마을의 삼(三) 자를 따서 덕삼리(德三里)라 부르게 되었다. 덕삼리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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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녀봉, 국사봉, 초당봉 등 명산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큰 도로가 생길 것이라 하여 도산리(道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원래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염솔면 도이동, 삼산동, 갈동을 통폐합하여 도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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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리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신동 간척지를 축조하기 이전에 바다 가운에 우뚝 솟은 섬에서 복숭아 오얏나무가 다수 자생하여 봄철에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루었다. 이에 복숭아 도(桃) 자 오얏 이(李) 자를 따서 ‘도리섬’이라고 칭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상도, 하도, 전동, 애동을 통합하여 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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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 마리의 큰 용이 두산리에 있는 두룡굴에 살다가 나갔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다. 지금은 두 용 사이에 작은 산이 가로 막혀 있어 ‘두산리’라 불리고 있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으로 두릉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능동, 고치리와 병합하여 두산리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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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모산 기슭 정상에서 보면 말등의 가운데 부분 같다 하여, 혹은 자모산 기슭에서 군마를 양성한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마사(馬沙)와 중리(中里)에서 한 자씩 따서 마중리라 하였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 마사리, 승선동, 중리, 정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마중리로 서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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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거부(巨富)를 제외하고 기타 주민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부자집의 꿈을 꾸기까지 하였다 하여 몽매동(夢梅洞)이라 부르게 되었고, 몽매동의 매(梅) 자와 특별한 전설은 없으나 발이방동(鉢伊坊洞)의 방(坊) 자를 따서 매방리(梅坊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몽매동과 발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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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모산(大模山)의 기슭에 촌락을 이루었다하여 붙여진 모산(模山)의 모(模) 자와 평야 지대라서 붙여진 이름인 평촌(平村)에서 평(坪) 자를 따서 모평리(模坪里)라 하였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도면 두당리와 하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모평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해방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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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鳳)이 낳았다 하여 봉생리(鳳生里)라 하였다. 구씨가(具氏家)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하관 직전에 지사와 상주 간의 모종의 알력으로 지사가 조금 더 파야 된다고 하여 다시 파기 시작하였고 밑바닥 돌장을 떠 일으키자 봉황새 한 쌍이 날았다. 이때 급히 다시 덮는 과정에서 봉황의 발 하나가 부러졌고 하나는 날아서 은봉산에 숨었다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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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봉산(隱峰山) 봉황(鳳凰)의 보호를 상징하는 봉화(烽火) 산맥이 부락 동쪽을 가로막아 둘려 내려 쌓인 곳이라 하여 봉성리(鳳城里)라 하였다. 해미군 염솔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염솔면 삼봉리와 하봉리를 통폐합해 봉화산 아래이므로 봉우재, 봉성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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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내동(士乃洞)의 사(士) 자와 현 진개골의 옛 지명인 진관동(眞冠洞)의 관(冠) 자를 따서 사관리(士冠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진관동(眞冠洞)과 사내동(士乃洞) 일부를 병합해 사관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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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해안에 위치하여 모래사장이 성처럼 둘러 싸여 있으므로 사성리(沙城里)라고 불렀다. 본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 사기소리, 성포리, 조금진리, 하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기소’와 ‘성포’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사성리라 하여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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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성리(山城里)라 부르기 시작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자모산 아래 동남방의 자모산 상부에 옛 성터가 있어 '산성(山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염솔면의 평촌리, 산성산리, 구동, 성산리 일부를 병합해 ‘산성산’과 ‘산성’에서 한 자씩 따서 산성리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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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봉운(宋逢云)[1891~1919]은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발포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송봉운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아버지는 송일기,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이다. 송봉운은 충청남도 당진군 대호지면 사성리 205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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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목장. 창택곶(倉澤串) 목장은 조선 시대 조정에서 말을 사육하던 목장이다.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창택곶 목장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었다가 갑인년에 서산시 대산읍에 있는 평신진(平薪鎭)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서산군 대산 목장(大山牧場), 태안군 이원 목장(梨園牧場)과 더불어 충청도 서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목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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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천(松川), 전촌(田村)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송전리(松田里)라고 하였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전촌리, 창리, 송천리, 정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전리라 하였으며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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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참나무가 많아 숯을 굽는 마을이라 하여 숯골[炭洞]의 '숯' 음을 수(壽) 자로 대치하고, 자연 마을 이름 원당골(員堂-)의 당(堂) 자를 따서 수당리(壽堂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一道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동(壽洞)과 안국동(安國洞)의 일부를 병합해 수동과 안국동에서 각각 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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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승 배불형(老僧拜佛形)이라 하여 옛날 노승(老僧)이 정기적으로 순방하여 성미(誠米)를 받아 마을의 모든 재난을 방비하는 데 시주(施主)하여 마을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노승이 죽자 마을 주민들은 은공을 기리는 뜻에서 장례를 후히 치렀다. 노승이 되로 모은 성미가 산에 비할 만큼 많은 혜택을 받았다 하여 승산리(升山里)라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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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는 어시산의 시(是) 자를 붙여 신시리(臣是里)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시 어시산리, 거동과 사내동, 마항리 각 일부를 통폐합하여 신시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하여 정미면이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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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안국산 봉수지(安國山烽燧址)는 조선 시대 충청도 해미현의 봉수가 있던 곳이다. 안국산 봉수는 당진현의 고산 봉수(高山烽燧)로 이어지고, 면천군의 창택 봉수(倉澤烽燧)를 거쳐 경기도 양성으로 넘어갔다. 조선 시대 통신의 중요한 요충지가 현재 당진시 정미면의 안국산 봉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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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안국산 봉수지(安國山烽燧址)는 조선 시대 충청도 해미현의 봉수가 있던 곳이다. 안국산 봉수는 당진현의 고산 봉수(高山烽燧)로 이어지고, 면천군의 창택 봉수(倉澤烽燧)를 거쳐 경기도 양성으로 넘어갔다. 조선 시대 통신의 중요한 요충지가 현재 당진시 정미면의 안국산 봉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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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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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편에 남북으로 자른 자모 산맥의 우무산이 서북쪽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어 마을의 구심점을 이루었다 하여 구한말 우(牛) 자의 음을 우(愚)로 하여 '우산리'라고 칭하였다. 조선 시대 해미군 염솔면 지역에 속했으며, 우무산 아래이므로 우수산 또는 우산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도 우산리만은 그대로 우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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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달준(李達俊)[1881~1919]은 당진시 대호지면 송전리 출신으로 1919년 4월 4일에 일어난 대호지면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가 옥중에서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이달준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이명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이다. 이달준은 지금의 충청남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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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윗말 동네에 옛날부터 현재까지 항상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어 장정리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면 정곡리, 상장지리, 하장지리, 경치리 일부를 통폐합하여 장지와 정곡에서 한 자씩 따서 장정리라 하여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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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적서리 일대의 토색(土色)이 유난히 붉기 때문에 붉은 땅, 즉 '붉은 쥐'라 해서 ‘적서리(赤鼠里)’라 했다.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 하전형(老鼠下田形) 지형이므로 ‘적서리’라고 하였으며, 이 밖에 도산이란 도사가 산세를 보고 ‘적서리’라고 정했다는 설도 있다. 서북쪽에 고양이 바위라 하는 바위가 있는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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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을 당진시에 통합시킨 행정 구획 변경.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은 원래 서산시에 속했다. 하지만 두 면은 서산시보다 당진시에 가깝다는 이유로 당진군 편입운동이 1930년대부터 전개되었다. 줄기차게 진행된 이 움직임은 1957년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그 결과 당진군의 군세(郡勢)가 확장되었고, 1958년 치른 제4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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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남서쪽에 있는 법정면. 해미현의 옛 명칭인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에서 '정(貞)'과 '미(美)' 두 글자를 따서 정미면(貞美面)이라 하였다. 정미면은 1914년 3월 16일 충청남도령 제3호에 의한 면의 명칭 및 구역 개정에 따라 1914년 4월 1일에 염솔면 일원과 일도면 일원이 해미군에서 서산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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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해미군 서면 조금진리 지역으로 조금 초등학교 뒤에 있는 청룡산이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이고 앞산이 거문고를 고르는 형이며, 서편에는 바다가 있어 서산시 지곡면과 대산읍 및 인천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기에 조금진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출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조금리(調琴里)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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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해미군 서면 조금진리 지역으로 조금 초등학교 뒤에 있는 청룡산이 옥녀 탄금형(玉女彈琴形)이고 앞산이 거문고를 고르는 형이며, 서편에는 바다가 있어 서산시 지곡면과 대산읍 및 인천과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기에 조금진리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출포리 일부를 병합하여 조금리(調琴里)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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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시대의 군현은 1413년(태종 13)에 개편되었다. 이때 당진 지역에는 면천군(沔川郡)과 당진현(唐津縣)이 설치되었다. 이곳을 관할하는 도(道)도 양광도(楊廣道)에서 충청도(忠淸道)로 개칭되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명칭이었다. 하지만 충주와 청주의 고을이 강등되면 공주와 홍주의 머리글자를 도명에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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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지각을 이루는 여러 가지 암석이나 지층의 성질 또는 상태. 당진 지역의 지질 분포 상태를 보면 시 면적의 약 1/2를 차지하는 결정 편마암계는 한국 최고의 지층인 변성 퇴적암류의 지층군으로서 부천계(富川系)이며, 송산면을 제외한 해안 지대에 넓게 발달하고 있다. 원생계의 화강 편마암계는 당진 지역의 송산면과 송악읍 일부에 유일하게 발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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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줄기가 바닷가로 날개처럼 길게 뻗었으므로 날개 또는 출포리(出浦里)라 하였다. 원래 해미군 서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출포리 일부를 조금리에 편입시키고 나머지 부분을 그대로 출포리라 해서 서산군 대호지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해서 대호지면이 정미면과 함께 서산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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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성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은봉산(隱峰山)의 봉황을 보호하고 있는 자모산의 산맥 아래 펼쳐진 마을이라 하여 '산성리', '하성리'라 각각 부르게 되었으며 은봉산과 연결된 봉화산 기슭의 동네를 '봉성리'라 불렀다. 해미군 염솔면 지역으로 성산 아래쪽이므로 아래성산, 하성산이라 하였다가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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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현재까지 당진 지역의 역사. 을사늑약을 계기로 의병 항쟁이 발발하였던 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 민족은 치열한 독립 투쟁을 전개하였다. 전 세계 식민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포악했던 일제 강점기도 결국 우리 민족의 독립 열기 앞에 무너져 내렸고,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해방 후의 진로는 열강에 의해 결정되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