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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영랑사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원효와 의상에 대한 이야기. 불교의 대중화와 불교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신라의 고승 원효가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 유학을 가는 도중에 겪은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 전설이다. 「원효와 당진」은 1993년 당진 문화원에서 그동안 수집 발표되었던 전설들을 모아 발간한 『당나루의 맥락(전설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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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시조이고 최기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최씨(慶州崔씨)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매곡리 탄우 마을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당진 입향조는 최치원의 24세손 최기선(崔己宣)[?~?]이다. 최기선은 18세기 초에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에 거주하다가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입향하였다. 그 후 25세손 최차봉(崔次奉)이 송산면 매곡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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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이 시조이고 홍박연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를 중심으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 배경은 인조 때 반정 공신인 학곡(鶴谷) 홍서봉(洪瑞鳳)[1572~1645]이 초락도를 사패지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18세기 말, 홍박연(洪博淵)과 형제들이 입향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거지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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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행정동. 당진3동은 당진시 중심지 북쪽과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동으로 우두동, 원당동, 시곡동 3개 동을 관할한다. 예전에는 일반적인 농촌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당진 중심지의 시가지 외연이 확장되면서 아파트, 관광서, 박물관 등이 속속 입지하여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당진’이라는 지명은 당나라를 오가는 큰 나루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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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행정동. ‘당진’이라는 지명은 당나라를 오가는 큰 나루라는 뜻의 백제어 '카라쓰'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당진2동은 당진동의 두번째 동이라는 의미이다. 1963년 1월에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2012년 1월 1일에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면서 당진읍이 당진 1동, 당진2동, 당진 3동의 행정동으로 분동되었다. 당진2동은 채운동, 대덕동,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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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행정동. 당진1동은 당진시의 중심지인 시내 상가지를 구성하고 있는 읍내동, 수청동의 2개 법정동을 관할한다. 당진시청을 비롯하여 경찰서, 교육청, 농협, 당진 문예의 전당 등 많은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고 당진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 기관도 위치하고 있다. ‘당진’이라는 지명은 당나라를 오가는 큰 나루라는 뜻의 백제어 '카라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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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행정동. 당진1동은 당진시의 중심지인 시내 상가지를 구성하고 있는 읍내동, 수청동의 2개 법정동을 관할한다. 당진시청을 비롯하여 경찰서, 교육청, 농협, 당진 문예의 전당 등 많은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고 당진 초중고등학교 등 교육 기관도 위치하고 있다. ‘당진’이라는 지명은 당나라를 오가는 큰 나루라는 뜻의 백제어 '카라쓰'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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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해안에 있던 조창. 당진포 해창(唐津浦海倉)은 옛 당진현 관할의 조창으로 당진 서창이라고도 불렸다.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에 있는 해창 마을은 조선 시대 조세 공납을 하던 해창이 있었기에 유래된 지명이다. 당진포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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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당진포리는 고대면의 대호 방조제 최상류 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서쪽에 대호지만을 면하고 있는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 해창 미곡 처리장이 있을 정도로 간사지를 간척하여 만든 답작 지대가 서쪽의 해창 주변, 동쪽의 탁주막 주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백제 때 당나라로 왕래하던 나루터인 당진포(唐津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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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던 조선 시대 해안 방어를 위한 성. 당진포(唐津浦)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다. 당진포 나루는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 세곡미를 거두어 저장하던 조창인 당진포 해창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엄중한 보호와 방어가 필요했던 곳이다.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은 충청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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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에 있는 옛 무덤.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석문 방향 도로에서 100여m 거리에 있는 옛 무덤으로, 이곳 주민들은 '막무데미 밭' 또는 '막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충청남도 도지 기록은 막무덤을 개인의 무덤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무명 용사의 집단 묘로 추측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인 663년 백제 부흥군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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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의 복지겸과 면천, 그리고 두견주에 얽힌 이야기. 복지겸(卜智謙)과 면천(沔川)과의 관계, 그리고 두견주(杜鵑酒)의 변천 과정, 복지겸의 묘소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順城面) 양유리(陽柳里)에 조성되는 사연 등을 조명한다. 당진에서 복지겸(卜智謙)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지겸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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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에 관향을 둔 세거 성씨. 면천복씨(沔川卜氏)는 당진시 면천에 본관을 둔 세거 성씨로, 시조는 복지겸(卜智謙)[?~?]이다. 복지겸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홍유(洪儒)·신숭겸(申崇謙)·배현경(裵玄慶)과 더불어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는 복지겸이 말년에 딸과 함께 낙향하여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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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를 비롯한 내포 지역에서 백제 유민들이 벌인 백제 부흥운동.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이 대립하고 있었던 650년대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던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에 국가 존망이 위태로웠다. 신라는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구려와 동북아 패권을 다투던 당나라와의 동맹을 제안하였다. 고구려 침공에 여러 번 실패했던 당나라는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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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을 포함한 내포 지방에 있는 백제 부흥 운동 전적지. 백제 부흥 전쟁은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이후 곧바로 시작되었다. 백제 부흥 전쟁은 663년 풍왕이 백강구 전투에서 패해 고구려로 망명하고 지수신(遲受信)이 이끌던 백제 부흥군이 임존성에서 마지막으로 항전하다 패할 때까지 3년간 지속된 전쟁이다.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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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출신의 고려 개국 공신. 복지겸(卜智謙)[?~?]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세우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고려 초 환선길과 임춘길의 모반 사건을 사전에 알아내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복지겸은 면천 복씨(沔川卜氏)의 시조이다. 초명(初名)은 사귀(沙貴) 또는 사괴(沙塊, 砂塊, 沙蕢)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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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종교. 당진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백제 말기라고 추정되는데 그 이유로는 세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백제는 고구려의 372년(소수림왕 2)보다 12년 뒤인 384년(침류왕 1)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東晋)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서 광주(廣州)의 남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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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형성된 삼국시대의 역사와 문화. 삼국시대의 국왕은 점차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면서 주변 부족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 나갔다. 또한 율령을 반포해 통치 체제를 정비했고, 집단의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불교를 받아들여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를 형성하였다. 당진 지역은 지리적 위치상 백제에 포함되었다. 백제의 일반 행정 체제는 방(方)·군(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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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의 바다를 가로막은 댐. 충청남도 당진은 과거 한반도 중심이자 당나라 교류의 중심지였다. 1979년 삽교호를 시작으로 석문 방조제, 대호 방조제가 건설되어 담수 면적 증대로 농업용수 및 공업용수를 확보하였고, 간척지와 교통로를 건설하였고, 농업과 철강 산업 발달에 기여하였으나, 천혜의 해양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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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의 바다를 가로막은 댐. 충청남도 당진은 과거 한반도 중심이자 당나라 교류의 중심지였다. 1979년 삽교호를 시작으로 석문 방조제, 대호 방조제가 건설되어 담수 면적 증대로 농업용수 및 공업용수를 확보하였고, 간척지와 교통로를 건설하였고, 농업과 철강 산업 발달에 기여하였으나, 천혜의 해양 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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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시장이 서는 날을 장날이라고 하였다, 이 날은 대개의 경우 가까운 장을 찾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집에서 생산한 물건을 팔고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의 교환, 사교장으로서의 역할도 했다. 당진은 1970년대 이전에는 교통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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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동북쪽에 있는 법정읍. 송악읍은 동쪽은 아산만을 건너 경기도 평택시, 서쪽은 송산면(松山面), 남쪽은 신평면(新平面), 북쪽은 아산만을 사이에 두고 경기도 평택시·화성시와 마주하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송학산의 이름을 따서 송악면(松嶽面)이라 하였다. 송악산은 '소나무가 울창한 큰 산'이란 뜻이다. 악(嶽)이란 옛날 나라에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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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에서 회갑부터 어른의 생신을 맞이하여 행해지던 평생 의례. 전통 사회에서부터 60세 이후의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수연 의례(壽宴儀禮)가 전해져 내려왔는데, 이를 축수(祝壽)라고도 한다. 우리 선조들은 인생에 있어서 수(壽)·부(富)·귀(貴)·강녕(康寧)·다남(多男)등의 오복(五福) 중에 오래 사는 것을 뜻하는 수(壽)를 으뜸으로 쳤기에 이를 축원하며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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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역사. 충청남도 당진시는 한반도의 중서부,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하며 내포(內浦)의 중심 지역이다. 삽교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비옥한 예당 평야를 바탕으로 질 좋은 쌀이 생산되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리아스식 해안은 주민들에게 풍부한 수산물을 제공하였다. 이 때문에 당진 지역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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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7 교구 수덕사의 말사. 영랑사의 명칭은 시주자인 영랑 공주의 이름을 차용하여 금강경 4구게인 “여몽환포영”의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는 뜻을 가미한 것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은 실체가 없이 조건 따라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것임을 의미한다. 661년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가 당나라로 유식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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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진관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7 교구 수덕사의 말사. 영랑사의 명칭은 시주자인 영랑 공주의 이름을 차용하여 금강경 4구게인 “여몽환포영”의 그림자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는 뜻을 가미한 것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은 실체가 없이 조건 따라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는 무상한 것임을 의미한다. 661년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가 당나라로 유식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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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하는 법정동. 당진시 용연동(龍淵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서산시 운산 방향으로 옛 32번 국도를 타고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하천이 마을의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는 전형적인 쌀농사 중심의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으로는 용연천 상류에 용연 저수지가 있으며, 서해안 고속 도로가 마을의 남단을 통과하고 있다. 용연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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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이 시조이고 원몽선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원주원씨(原州元氏)의 시조는 원경(元鏡)이고, 당진시 석문면의 입향조는 18세 원몽선(元夢善)[1690~1763]이다. 원주원씨 시중공파(侍中公派)다. 석문면의 원주원씨는 약 300여 년을 계승하며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당진시 순성면에도 원주원씨 집성촌이 형성되었는데, 국회 의원과 농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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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 시대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인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부르는 명칭. 유교(儒敎)는 공자(孔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유학(儒學)이란 말과 함께 통용된다. 유교는 인(仁)을 근본으로 하며,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덕목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경전으로 한다. 공자는 기원전 557년 노나라 곡부에서 탄생하였고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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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방리(中方里)는 당진~합덕~예산 쪽으로 통하는 국도 32호선이 지나가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면서 과수 농업이 성한 곳이다. 북쪽에 홍주 북창이 있었던 곳으로 남원천이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우강면 송산리 경계에 위치한 당산과 접해 있다. 남원천 변의 들 한가운데인 중방들에 마을이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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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산[111.7m]에서 발원한 진관천이 마을 중앙에서 동서 방향으로 흐르다가 역천에 유입되고, 동쪽 역천 변에 간사지를 간척하여 만든 진관 평야가 넓게 전개되고 있는 농촌 부락이다. 옛날 당나라 사신들이 왕래할 때 유숙하던 관터가 남아있으며, 인근에 신라 564년(진흥왕 25) 아도 국사가 중창한 것으로 전해지는 영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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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과 행정동에 있는 시내나 강을 사람이나 차량이 건널 수 있게 만든 다리 채운교는 우두동에 속해 있지만 채운교의 가설은 고대, 석문 지역 주민들이 당진 시내 방면으로의 왕래하는 육로 교통 거리를 많이 단축시켜 주었다. ‘채운’이란 원래 그 지역에 큰 경사나 위인이 있으면 오색운(五色雲)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중국의 풍수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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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채운교 건립 기념비. 채운포 석교비는 1688년(숙종 14년) 당진의 채운포에 세워진 비석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심지에서 서쪽에 있는 당진시 석문면과 고대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역천(驛川)이라는 개울을 건너야 한다. 그 포구가 채운포이다. 석교비는 이곳에 돌로 만든 다리가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유물이다. 채운포 석교비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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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초락도리에 남양홍씨가 모여 형성된 집성촌. 홍씨(洪氏)는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에 들어온 홍천하(洪天河)를 선시조(先始祖)로 모시고 있다. 그는 삼국 통일 이후 신라 태자(太子)의 태사(太師)가 되었고,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다. 하지만 계통이 불명확하여 남양홍씨는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 공신인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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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900년 후백제가 들어서기 전까지 통일신라 시기의 충청남도 당진의 역사.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전제 왕권을 크게 강화하는 한편, 중앙 집권 체제로 제도를 재정비하였다. 중앙의 정치 체제는 집사부를 중심으로 관료 기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집사부 시중의 지위를 높였고, 그 아래에는 위화부를 비롯한 13부를 두고 행정 업무를 분담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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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당진시에서 선박이 안전하게 입출항 및 정박할 수 있는 설비를 한 항구. 평택·당진항은 1986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평택항은 수도권의 제2의 관문으로서 1986년 무역항으로 개항한 후 정부의 3대 국책항만 및 5대 국책 개발 사업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1989년부터 정부 재정 및 민자 유치 사업으로서 충청남도 당진 지구와 경기도 평택 지역에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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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음양오행설로 자연지리의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의 어원은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은 피하고, 물은 얻는다]에서 나왔다. 사세(四勢)인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우현무(後玄武), 전주작(前朱雀) 중 어느 하나가 없는 곳을 택하여 살아 있는 자가 생활하는 양택 풍수인 터[주택지,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와 죽은 자의 안식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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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한진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12㎞ 정도 떨어진 북쪽끝 아산만 가에 있는 포구 마을이다. 한때는 일본으로 어란을 수출하는 항구이기도 했으며, 평택 만호리와 인천을 오가는 배가 다녔다. 당나라 시대부터 큰 나루[大津]라 하여 당나라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면천, 당진, 태안, 홍주, 결성, 보령, 남포, 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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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속하는 법정리. 한진리는 송악읍 소재지에서 12㎞ 정도 떨어진 북쪽끝 아산만 가에 있는 포구 마을이다. 한때는 일본으로 어란을 수출하는 항구이기도 했으며, 평택 만호리와 인천을 오가는 배가 다녔다. 당나라 시대부터 큰 나루[大津]라 하여 당나라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면천, 당진, 태안, 홍주, 결성, 보령, 남포, 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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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에 있는 해안 포구. 현재 당진시 동북쪽의 송악읍 한진리 아산만 앞 한진포구는 옛날 대진(大津), 한나루, 나루머리[津頭] 등으로 불리던 나루터였다. 한진포구에서는 ‘썩어도 준치’라고 준치가 많이 잡혔다. 한때는 100여 척의 배가 드나들며 연평도의 조기를 잡아오기도 하였다. 아산만에서 서해로 통하는 큰 포구로, 한진포구와 경기도 평택시 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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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는 자연 마을명. 해창(海倉)은 온동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1514년(중종 9)에 쌓은 둘레 1340자, 높이 9자의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이 있어서 수군만호(水軍萬戶)와 수군 다수가 주둔하여 서해를 지키던 요지이며, 조운을 하던 곳이였다. 당진포진성 주변에 현물세인 곡물을 저장하던 바닷가에 창(倉)이 있기에 해창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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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었던 나루터.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에 자연 마을인 해창(海倉) 마을이 있다. ‘해창’이란 지명은 해상 교통이 편리한 당진포 바닷가에 국가에서 세운 조세 보관 창고인 해창(海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당진포리에서 뻗어 나온 구릉의 말단부인 망재산이 서해와 만나 멈춘 지점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