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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재임 중에 지은 목민서. 「칠사고(七事考)」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 면천군수로 있으면서 작성한 글을 모은 『면양 잡록(沔陽雜錄)』 가운데 포함된 글이다. 작성 시기는 면천군수로 재임한 1799년 5월부터 1800년 8월 사이다. 「칠사고」는 『경국대전』 규정에 나오는 ‘수령칠사(守令七事)’, 즉 수령이 해야 할 일곱 가지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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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 방죽에 대해 노래한 순수 민요. 합덕 방죽은 합덕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역 주민들은 ‘합덕제’ 보다 좀 더 친근하고 토속적인 이름인 ‘합덕 방죽’을 더 선호하였다. 합덕 방죽에 관해서는 수많은 전설과 설화, 민요가 전해진다. 견훤과 군마 이야기, 오색으로 변한다는 용충과 용정의 샘 이야기, 합덕 방죽 가득 피었다는 연꽃에 얽힌 이야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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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이 지금의 당진 지역인 면천 군수 시절 지은 서간첩.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문호 박지원(朴趾源)이 반초서체 친필로 쓴 편지글 모음이다. 2005년 서울 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에서 발굴되었다. 2005년 발견된 친필 편지글들은 『연암집』에는 실리지 않았던 글들인데, 연암이 60세가 되어 안의 현감으로 있던 17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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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1785년에 당진 지역 사람들이 연루된 역모 사건.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 발생한 『정감록』 역모 사건(鄭鑑錄逆謀事件)은 주형채, 문양해, 양형 등 평민이 주축이 되어 좌의정 홍낙순 아들 홍복영, 노론 벽파지만 권력에서 소외된 이율, 훈련도감 구선복 등 양반을 설득하여 자금 지원을 받고 정감록에 따른 새 왕조를 도모한 역모사건이다. 『정감록』 역모 사건 당시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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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고산리에 있던 조선 시대 봉수.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서부와 대호지면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는 고산[164m]은 해발 고도는 높지 않지만 인근 산천을 경계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산이다. 고산의 정상에는 봉수 터가 있는데 크기가 23×21m 정도이다. 이 봉수 터가 바로 조선 시대 국가의 통신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고산 봉수(高山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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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행해지는 제철 산업, 발전 산업 등 과학기술의 총칭. 현대 사회를 일컬어 흔히 ‘과학기술의 시대’라 부른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농업 지역이던 당진시도 변화시켰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해안 시대가 열리고 산업 개발이 본격화된 것이다. 당진시는 1994년 7월 7일 서해안 고속 도로가 개통되었고, 당진~대전 간 고속 도로가 연결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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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 관음사에 있는 돌미륵. 당산은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있는 해발 79m의 산으로 당산미 또는 수부산(壽富山)이라고도 불린다. 당산의 이름을 ‘당산, 수부산’으로 부르는 것은 당산에 있는 미륵당에서 사람들이 수복 부귀를 빌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당산미’라고 부르는 것은 당산 아래 마을, 당산말이 당산미로 변하게 된 것이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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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에 있는 교하노씨의 효열문. 교하노씨의 본명은 노지임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남다른 효녀였다. 안씨 집안으로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노지임은 절망하여 끼니를 거르면서도 태연하게 집안일을 보살펴 이웃에서 감동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주변에서 노씨의 재색을 아깝게 여겨 재가할 것을 권하고 다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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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서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를 잇는,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탄정리를 기점으로 강원도 춘천시 서면 오월리까지 연결되는 국가 지원 지방도. 국가 지원 지방도(國家支援地方道路)는 국가의 비용으로 건설하고 광역시도의 지사나 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가 있고, 자치 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지방도가 있다.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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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해안에서 서식하는 패류(貝類) 가운데 참굴. 참굴은 패류의 일종으로 굴조개라고 불리기도 한다. 해안의 바위에 붙어 서식하는 특성이 있어 석화(石花)라고도 부른다. 참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로 불리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할 만큼 사람들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굴이 식용으로 이용된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선사 시대 조개더미에서 굴 껍데기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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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금속류나 석물 등의 각종 유물에 새긴 글씨 또는 그림.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붙이나 석물에 새겨진 그림이나 글씨를 가리킨다. 금석문은 각 연대에 따라 글씨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데, 광개토 대왕릉비·진흥왕 순수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의 탑비는 불교사 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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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출신의 정치가 김용재(金用在)[1912~1957]는 당진시 채운동 출신으로 제헌 의원을 지낸 정치가이다. 예산 농업 학교 시절 예농 독서회 항일 운동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치른 제헌 의원 선거에서 이승만이 이끌던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진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1957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장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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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한 문신·학자. 김윤식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박지원의 손자인 개화파 박규수의 문인이다. 영선사로 청나라에 들어가 위안스카이를 만난 이후 어윤중과 함께 친청 온건 개화파를 대표하였다. 명성 황후와 대립하여 당진 면천에서 6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면천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면양 행견 일기』를 저술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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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김재기의 효자 정려. 김재기 효자문은 순성면 갈산리에 있는 효자 정려이다. 효자문 현판에는 효자 김재기 정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추증된 벼슬이 종사랑 중학교 교관임을 알 수 있다. 김재기 효자문은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에 있다. 당진 시내에서 순성 방향으로 가다가 갈산 주유소를 지나 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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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바다, 호수 등에 있는 낚시터. 낚시는 인간의 역사 중 야생의 상태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진화 발전하였다. 낚시의 기원은 사냥과 더불어서 인류가 직립 보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실제로 신석기 시대의 유적 발굴 현장에서는 거의 어디에서든 낚시 바늘이 출토되고 있다. 1982년에 양양군(襄陽郡) 선양면 오산리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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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두동에 있던 당진현의 공세미 보관 창고. 당진 북창(唐津北倉)은 조선 시대 당진현에서 관리하던 현물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이다. 『당진읍지』를 보면 당진현에는 읍창, 북창, 해창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당진 북창은 조선 초기에 당진현의 북쪽에 설치되었던 조창으로 보관했던 공세미는 조운선을 통해 경창으로 옮겨 갔다. 당진 북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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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소소리 일대에서 발견된 초기 철기 시대 유적. 당진 소소리 선사 유적은 당진시 합덕읍 소소리에 거주하는 주민이 밭을 경작하다가 발견한 유물을 1990년 3월 7일 국립 중앙 박물관 고고부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신고된 유물은 모두 15건 19점으로 동꺾창(銅戈)를 비롯한 철기시대의 일괄 유물 10건 13점과 고려시대 유물 5건 6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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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능안길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의무의 묘와 신도비. 이의무 묘 및 신도비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능안길 143-26[도문리 산78-1] 덕수 이씨 묘역 안에 있다. 이의무(李宜茂)[1449~1507]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형지(馨之), 호는 연헌(連軒)이다. 지돈령 부사(知敦寧府事) 이명신(李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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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연안에서 잡히는 문어과의 해수 어종. 주꾸미는 당진시 해안에서 잡히는 문어과에 속한 해수 어종이다. 주꾸미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며 수심 5~50m 정도의 모래자갈 바닥에서 비교적 흔히 발견된다. 몸통에 여덟 개의 팔이 달려 있는 것은 낙지와 비슷하나, 낙지는 몸길이가 70㎝ 정도 되는 데 비해 주꾸미는 몸길이가 약 20㎝로 작은 편에 속한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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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백제에서 후백제 시기의 저수지와 방죽. 합덕제(合德堤)를 기록한 『여지승람(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의하면 합덕제는 조선의 대표적이고도 유명한 3대 방죽으로 알려져 있다. 합덕제는 합덕 방죽, 합덕 제언, 합덕지, 연호, 연지, 연제, 하호 등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저수지에 연꽃이 만발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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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향토 문화 연구소. 당진 향토 문화 연구소는 당진의 향토 문화를 조사, 발굴, 기록, 홍보하고 문화유산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 당진 시민의 애향심 고취와 한국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1983년 5월 20일 최무웅, 홍석표, 김추윤 등이 당진 학다방에서 당진 향토 문화 연구소를 설립할 것을 발기하여 설립되었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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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옛 당진읍성에 있었던 조선 시대 관사(館舍). 당진객사는 옛 당진읍성 안에 있던 객사이다. 공적 업무를 위해 출장 온 관리들의 숙박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고려 말 1279년(충렬왕 5) 8월부터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당진객사는 조선 초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객사와 관련된 기록은 『세종실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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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어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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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전통 대장간. 당진대장간은 전통 방식 그대로 쇠을 생산하여 가공하는 대장간이다. 당진대장간 손창식 야장(冶匠)[대장장]은 당진 시장 내에서 4대째 가업으로 대장간 일을 계승하고 있다. 당진대장간은 지역적 특성인 바다와 관련된 해양 분야의 어로 기술인 맨손 어업에 필요한 작업 도구를 만드는 독창적인 기술을 갖고 있고, 이 점을 인정받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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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백제 산성. 성상리 산성(城上里山城)은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산을 깍아 만든 이른바 삭토법으로 축성된 토성으로, 전형적인 백제 토성이다. 당진 성상리 산성에 대한 기록이 전하는 바가 없지만 몽산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 시기 면천의 옛 이름인 혜군의 치성으로 쓰이다 낮은 산과 토성이라는 한계를 고려하여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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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속한 옛 면천군 출신의 역사적 인물과 치성인 면천읍성. 면천군은 옛 백제의 군현으로 내포 지방의 중심이던 곳이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군의 왕도이던 피성(避城)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백제와의 관계는 면천 사람들이 신라 조정에 반감을 품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면천 출신 인물들은 신라 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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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해안에 있던 조창. 당진포 해창(唐津浦海倉)은 옛 당진현 관할의 조창으로 당진 서창이라고도 불렸다.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 온동 마을 북서쪽에 있는 해창 마을은 조선 시대 조세 공납을 하던 해창이 있었기에 유래된 지명이다. 당진포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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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 시대 외침 방어를 목적으로 설치되어 당진포진성에 주둔했던 수군의 관직. 만호(萬戶)란 고려 말 원나라가 일본 정벌에 나서면서 처음 도입한 원나라 제도이다. 백성의 호구수에 따라 만호, 천호, 백호 등으로 나눴으나, 점차 민호의 수와 관계없이 장수의 품계를 뜻하는 말로 수군의 관직을 의미하게 되었다. 1458년(세조 4)에 진관 체제(鎭管體制)가 완비되면서 각 도 연해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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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당진포리에 있던 조선 시대 해안 방어를 위한 성. 당진포(唐津浦)는 백제 말부터 당나라를 왕래하는 사신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나루터가 있어서 ‘당진포’라고 불렸다. 당진포 나루는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 세곡미를 거두어 저장하던 조창인 당진포 해창이 있어서 조정에서는 엄중한 보호와 방어가 필요했던 곳이다. 당진포진성(唐津浦鎭城)은 충청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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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에 있는 옛 무덤. 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대촌리 석문 방향 도로에서 100여m 거리에 있는 옛 무덤으로, 이곳 주민들은 '막무데미 밭' 또는 '막무덤'이라 부르고 있다. 충청남도 도지 기록은 막무덤을 개인의 무덤이 아닌 전쟁으로 인한 무명 용사의 집단 묘로 추측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한 이후인 663년 백제 부흥군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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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도비도에 있는 방파제. 방파제는 바닷가 항만이나 어항, 포구에 설치하는 인공 구조물로써 말 그대로 파도를 막기 위한 시설물이다. 방파제는 기본적으로 외해(外海)로부터의 파랑이나 조류를 막아 항내의 정온(靜穩)을 확보하고, 항내에 모래가 쌓이는 것을 막아 수심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도비도 방파제는 대호 방조제와 연결된 도비도 내의 방파제다. 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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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와 특색. 충청남도 당진시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게 특정한 지역에 분포하는 동물의 모든 종류를 열거하여 동물상(動物相)이라고 한다. 당진시의 동물상은 식물상과 함께 생물상을 구성한다. 동물상은 통상적으로 종(種)의 리스트 및 그 지역의 동물적인 특색을 가리킨다. 보통 동물상은 환경 조건, 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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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의 왜목항을 거점형 마리나 항만으로 개발하는 사업. ‘마리나 항’이란 요트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해양 선박을 위한 계류 시설을 갖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해양 레저 시설을 갖춘 특수한 항만 구역을 말한다. 마리나 항이라는 용어는 '해변의 산책길'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2009년 12월부터 '마리나 항만의 조성 및 관리 등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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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었던 공세미를 보관하던 조창 터. 면천 북창은 해안에 면한 당진시 송산면 당산리에 있었던 조창이다. 면천에는 여러 조창과 사창이 설치되었는데, 그 조창 가운데 하나가 면천 북창이다.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면천 창고 조에 보면, 면천 북창은 창택산 서쪽 해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면천읍지』에는 북창은 36간으로 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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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관사. 면천객사(沔川客舍)는 목판에 쓴 중수 기록문에 의하면 건립 연대가 1433년(세종 15)이며, 그 후 다섯 차례나 중수하였고 1662년(현종 3)에 다시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면천객사는 현판을 ‘조종관(朝宗館)’이라 양각하여 새겼는데, ‘조종(朝宗)’이란 제후가 임금을 배알하여 조회를 한다는 뜻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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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문봉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한 것이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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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몽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삼국 시대 산성. 몽산성(夢山城)이 있는 몽산[299m]은 충청남도 당진시의 중남부 면천면 성상리·송학리와 순성면 성북리·백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몽산성'이라 불리기도 하며, 조선 시대에는 면천군의 진산(鎭山)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 조에는 "몽산(夢山)이 군 북쪽 4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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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인환의 효자 정려. 문인환(文仁煥)[1846~1886]은 문익점의 후손으로, 1846년 2월 12일 문영휘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인환은 태어난 지 몇 해 안 되어 큰집인 정미면 산성리에 사는 문영철의 양자로 들어갔다. 여덟 살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양아버지 문영철이 큰병이 들자 문인환은 지극한 병간호로 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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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가종을 모신 사당. 문정사(文定祠)는 이가종(李可種)을 모신 신평 이씨(新平李氏)의 사당이다. 신평 이씨는 당진 지역을 대표하는 성씨 중의 하나로 문정공파는 이가종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신평 이씨의 시조 이덕명(李德明)은 시호가 문간(文簡)으로,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이덕명의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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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충식의 효자 정려. 문충식(文忠植)은 남평 문씨 후손으로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서 태어났다. 직업이 한의사였던 문충식은 어머니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다. 하지만 어머니 병환이 별다른 차도가 없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어머니 입에 피를 흘려 넣었으며, 수저에 피를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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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남겨진 유산 중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치가 인정되는 다양한 사물. 문화재는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구전(口傳)·음악·인종학적인 유산·민속·법·습관·생활 양식 등 인류의 정신적 본질을 표현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문화재보다는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다. 우리 나라의「문화재 보호법」에서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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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후기 박순명의 효자 정려. 박순명 효자문이 세워진 연대는 1600년대로 추정되는데, 박순명의 효행은 전설로 전하고 있다. 박순명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를 내외가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박순명이 징병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되자 어머니가 날마다 정한수를 떠놓고 나라의 태평함과 아들의 무훈장수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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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당진의 면천 군수를 지낸 문신·학자.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아버지가 벼슬을 하지는 않았으나 당대 내로라하는 반남 박씨 노론 명문가 출생이었다. 박지원은 학문이 뛰어났으나 1765년 처음 본 과거에서 낙방한 이후로 과거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전념하였다. 1768년 오늘날의 파고다 공원 자리인 백탑(白塔) 근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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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원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효건의 효자 정려. 박효건(朴孝騫)은 조선 영조 때 인물이다.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자선대부에 이르렀다. 박효건은 효성이 지극하여 한양에 있으면서도 한 달에 한 번씩 고향을 찾아 부모에게 문안을 드렸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박효건이 지체 없이 고향으로 내려가 칼로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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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희란·박희전의 효자 정려. 박희란과 박희전 형제는 조선 후기 사람이다. 대대로 효행으로 이름난 가문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행동을 통하여 효행을 몸에 익혔다. 형제는 관직에 올라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효를 으뜸으로 여기면서 나랏일을 보아 칭찬이 자자하였다. 박희란은 정4품, 박희전은 정2품 벼슬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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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용연동에 있는 효자문. 백남은(白南銀)[?~?]과 백남규(白南奎)[?~?]는 수원 백씨(水原白氏) 백낙헌의 6형제 중 셋째와 다섯째 아들로 당진 용연리에서 태어났다. 형제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였는데 슬퍼하는 것이나 장례를 치르는 예절 등이 어른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저녁마다 홀로 계신 어머니의 이부자리를 살피고 새벽에는 문안을 드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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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를 비롯한 내포 지역에서 백제 유민들이 벌인 백제 부흥운동. 고구려와 백제, 신라 삼국이 대립하고 있었던 650년대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던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에 국가 존망이 위태로웠다. 신라는 국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고구려와 동북아 패권을 다투던 당나라와의 동맹을 제안하였다. 고구려 침공에 여러 번 실패했던 당나라는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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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을 포함한 내포 지방에 있는 백제 부흥 운동 전적지. 백제 부흥 전쟁은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이후 곧바로 시작되었다. 백제 부흥 전쟁은 663년 풍왕이 백강구 전투에서 패해 고구려로 망명하고 지수신(遲受信)이 이끌던 백제 부흥군이 임존성에서 마지막으로 항전하다 패할 때까지 3년간 지속된 전쟁이다.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에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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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있던 불과 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 봉수(烽燧)는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봉(烽)[불]과 수(燧)[연기]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우역제(郵驛制)와 더불어 신식 우편과 전기 통신이 창시되기 이전의 전근대 국가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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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설립된 협동조합과 사회적 공익을 위해 운영되는 사업체. 협동조합은 소비자, 소상공인, 소규모 생산자 등이 출자해 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운영하는 조직으로 일반 협동조합, 노동자 협동조합, 생산자 협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나뉜다. 국제 협동조합 연맹은 협동조합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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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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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이나 평지에 세웠던 인위적 건축물. 성곽은 고대 외적의 침입을 막아 내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성벽을 말하는데, 보통 안쪽의 것을 성(城) 또는 내성(內城)이라 하고 바깥에 쌓은 성벽을 외성(外城) 또는 곽(郭)이라 한다. 성곽은 지형적인 조건과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여러 모양으로 발달하게 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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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성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 토성. 성동산성(城東山城)은 삼국 시대 백제 토성으로, 산 능선을 따라 퇴뫼식으로 토축하여 성벽을 쌓은 산성이다. 백제 시기에는 합덕 지방의 치성(雉城)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동산성은 후백제 견훤이 축조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합덕을 차지하는 세력이 전체적인 패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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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평야. 소들강문은 소들과 강문이 합쳐져 지명이 된 경우이다. '소들'의 어원은 철종 때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우평(牛坪)'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내포 지방의 방언인 솟뜰이란 말의 어원과 일치한다. 솟뜰이란 입술의 인중과 같이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 바다에서 퇴적의 결과 생겨난 섬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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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가학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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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중흥리 송악산 위에 있던 석성. 송악산(松嶽山)은 송악읍 중흥리 송악 초등학교 뒷산으로, 송악읍 중흥리·석포리·정곡리·월곡리에 걸쳐 있다. ‘송악산’의 명칭은 ‘숭학사’에서 왔다고 한다. 송악산 중턱에 숭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원래 송악산의 이름도 숭학사가 있던 산이라 하여 ‘숭학산’이었는데, 이것이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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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전역에 있는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세운 철탑.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인 전력 생산은 수력, 화력, 풍력, 원자력 등을 이용해 발전소에서 생산된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처인 소비지까지 송전해야 한다. 전력이란 제품은 반드시 전선을 통해 송전되는데 이동 전선을 고정하기 위한 송전탑이라는 철탑이 필요하게 된다. 송전탑은 전력 사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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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해주 오씨 문중 묘역에 돌로 만들어 세운 등. 장명등(長明燈)은 분묘 앞에 세운 네모진 모양의 석등이다. 무덤 앞이나 사찰의 경내에 세워진 장명등은 받침대와 몸체 부분·지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명등의 기능은 본질적으로 묘역이나 건물의 외부 공간을 밝히는 데 있으나, 분묘의 장명등은 조선 시대 피장자의신분을 표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분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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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군에 있던 조선 시대 공무를 담당했던 역참. 순성역(順城驛)은 순성면 양유리 역말에 있었는데 구화역이라고도 부른다. 『면천읍지』에 보면, "순성역에는 말 14필,역리 20명 노 15명, 비 1명이 있었으며, 금정역에 속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행 등이 1531년(중종 26)에 지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면천군 역원 조에 보면. "순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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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고대면 용두리에서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를 잇는 당진시 시도. 당진시의 시도는 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가 있고, 국가가 건설하고 광역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가 있으며, 자치 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지방도, 자치단체 시장과 군수가 관리하는 시군도가 있다. 당진시도 4호선은 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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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서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이르는 당진시 시도. 당진시의 시도는 당진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가 있고, 국가가 건설하고 광역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가 있으며, 지방도는 자치 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이고, 시군도는 자치 단체 시장 군수가 관리하는 도로이다. 당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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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일대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지. 당진 지역에서는 해안 및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대난지도 유적 외에 초락도, 교로리 등지에서도 패총 유적이 발견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우두리 2지역, 석우리·소소리·유곡리·기지시리 내기 유적 등에서 주거지와 야외 노지 등의 생활 유구들이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지역은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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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천도교 간부이자 독립운동가. 신태순(申泰舜)[1884~1929]은 충청남도 당진시 당진동 대덕리 토골 853번지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고향에서 한학을 배운 후 일찍이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04년 김현구, 박용태 등과 함께 천도교 당진 교구를 창설하는 데 공헌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고향을 떠나 상경하였다. 이후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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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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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있는 전통 대장간. 신평대장간은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에 있는 대장간이다. 원래 대장간은 철광석과 참숯을 점토로 만든 용광로에 넣어 철을 뽑아내고. 뽑아낸 철을 수백, 수천 번 두들겨 농기구를 만드는 곳이다. 신평대장간 역시 전통적인 방식으로 철을 생산하여 농기구를 생산하는 전통 대장간이다. 신평대장간을 운영하는 이영구 장인은 아버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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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에 있는 옛 신평현의 행정 치소.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은 홍주목(洪州牧)의 월경지(越境地)[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의 특수 구역]로 신평현(新平縣)으로 불렸다. 신평현성은 신평현의 치소로 쓰였다. 토사를 다지는 방식으로 둘레 약 520m, 높이 7m 규모이며 해안 방어용으로 구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형식은 삼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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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대덕동에 있는 신평호씨 효녀문. 신평호씨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여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신평호씨는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돌아온 후에도 아버지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몸이 쇠약했던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자 신평호씨는 급한 김에 양 손가락을 찢어 아버지에게 피를 먹였고, 그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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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안민학의 신도비. 안민학(安敏學)[1452~1601]의 본관은 광주(廣州)이고 자는 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이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당대의 대유학자들인 이이, 정철, 이지함, 성혼, 고경명 등과 교유하였다. 사헌부 감찰, 대흥 현감을 시작으로 아산·현풍·태인 등의 현감을 지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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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잡히는 해수어와 담수어. 충청남도 당진시는 아산만을 통해 서해에 접한 연안 지역으로, 당진시의 바다 면적은 약 1,606㎢이고, 어민수는 3,951가구에 7,999명이다. 또한 삽교천, 남원천, 역천, 염솔천 등의 하천이 삽교호, 대호, 석문호로 유입되고 있어 다양한 종류의 해수어와 담수어가 서식하고 있다. 해수어는 바다와 접한 송악읍,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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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채운동에 있는 종합 유선 방송 사업자. LG 헬로비전 충남방송은 종합 유선 방송 사업자이다. 유선 방송이란 1961년에 제정된 '유선 방송 수신 관리법'에 따라 설립되어 무선 방송의 약한 전파를 증폭하는 방식으로 유선을 통해 무선 방송의 한계를 극복하였다. 유선 방송의 등장으로 무선 방송의 난시청을 해소하여 선명한 화면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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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주요 역로에 세워졌던 조선 시대 국영 교통, 통신 및 관원들을 위한 숙박 시설. 역(驛)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 및 외국 사신의 왕래 숙박, 말을 공급하여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돕기 위한 기관이며, 교통로를 따라서 30리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각 역에는 역장, 역리, 역졸, 역정, 노비 등이 있어서 역무를 수행하고 또 여러 명목의 역둔토(驛屯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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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사람의 용모·용태를 그린 회화. 영정은 인물화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초상화라는 용어가 최근 만들어진 용어라고 할 때, 영정은 삼국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초상화를 이르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 초상화가 어느 시기에 처음 그려졌나는 기록상으로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백제의 아사 태자[阿佐太子]가 그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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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원당동에 있는, 당진시의 세무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 국세청 예산세무서의 당진 지서. 대한민국의 조세 업무를 관장하는 국세청 아래에는 서울 지방 국세청, 중부 지방 국세청, 대전 지방 국세청, 광주 지방 국세청, 대구 지방 국세청, 부산 지방 국세청 등 6개의 지방 국세청이 있고, 그 아래에 각 지역별 세무서가 있다. 국세청은 1950년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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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기 왜구들의 빈번한 침입으로 충청남도 당진 지방이 입은 전란(戰亂)과 그 피해. 왜구는 고려 말인 1223년(고종 10)에 금주[현 경상남도 김해]를 처음 침입한 이후 1350년(충정왕 2)부터 1392년(공양왕 4)까지 169년 동안 총 519회나 침략하였다. 이런 왜구들의 침략에 고려 조정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왜구들의 침입은 남부 연안 지대를 넘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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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이자 정치가. 원용석(元容奭)[1906~1989]은 당진시 순성면 성북리 출신의 관료, 정치인이다. 1921년 면천 공립 보통학교[4년제, 9회] 졸업 이후 보성 고등 보통학교[5년], 1929년에 경성 고등 공업 학교[현 서울 대학교 공과 대학]를 졸업하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식량 기획단 부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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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리에 세워진 윤황의 신도비. 윤황(尹璜)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자호는 후송이며, 광성대부 문하평리 공조 전서[판서]를 역임하였다. 윤황은 도평의녹사 문하평리 윤수균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하자 당시의 최고 행정 관청인 문하부의 문하평리 벼슬에 있던 윤황은 조선의 신하가 되지 않기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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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영탑사 뒷산에 위치한 높이 4m의 자연 암벽. 의두암(依斗巖)은 당진시 면천면의 영탑사(靈塔寺) 뒷산 연화봉에 있는 자연 암벽이다. 생김새는 산 정상 못 미쳐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 형상이다. 의두암은 높이가 4m 정도에 3층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수직 벽면에 예서체로 ‘의두암’이라 새겨져 있다. 글씨를 새긴 사람은 구한말의 고위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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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거산리 한원사에 보관된 조선 후기의 무신 이만유가 남긴 유물. 이만유(李萬維)[1684~1750]는 조선 숙종·영조 때 인물로 1719년(숙종 45)에 무과에 급제해 도문무사 자헌 지중추부사, 양성, 낙안 등 현감, 경상도 좌수사, 의주 부윤,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고려 후기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5대 손으로 본관은 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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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이상·이사철의 효자 정려. 이상(李祥)은 본관이 신평(新平), 호는 덕계이다. 여덟 살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서 7년간이나 머물러 있는 동안에 부모를 그리워하는 효심에 감동한 왜인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상은 고국에 돌아온 지 1년 만에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벼슬길에 올라 이조 정랑,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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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규·이희천·이희창의 효자 정려. 이성규(李聖規)와 아들 이희천, 이희창의 효자문은 순성면 옥호리에 있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늘 부모 곁에서 식사를 했는데 항상 먼저 맛보고 음식을 드렸으며, 때때로 이웃 마을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따뜻한 가슴에 품고 돌아와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위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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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언론인·정치가·종교인·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종린(李鍾麟)[1883~1950)은 천도교 출신의 종교인이자 정치가였다. 1888년 혜사(蕙史) 최현구(崔賢九)의 문하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상경하여 1907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한림학사를 지내던 중 시세가 위태로워지자 관직을 버리고 족형 이종일이 운영하던 『제국신문』의 기자로 언론인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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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서 내포 동학 농민군을 이끈 동학 대접주. 동학 농민 혁명은 조선 말인 1894년 국가적 위기와 신분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던 조선 민중들이 항거하면서 벌어진 대 사건이었다. 내포 지방의 동학 농민군도 대대적으로 봉기하였는데 면천의 대접주 이창구(李昌九)[?~1894]는 지금의 당진시 송악읍 월곡리에서 봉기하였다. 이창구는 내포 지방을 대표하는 동학 대접주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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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이첨의 신도비 이첨(李詹)[1345~1405]은 신평현 신북면 오사리[현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면 오곡리]에서 이희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시호는 문안(文案)이다. 이첨은 1365년(공민왕 14)에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우왕 때 이인임과 지윤을 처벌할 것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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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관료·정치인·친일 반민족 행위자. 인태식(印泰植)[1902~1975]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출신으로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졸업 후 1927년 야마구치(山口) 고등학교, 1930년 도후쿠(東北) 제국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세무 관료로 활동하였고, 해방 후 재무 관료로 시작하여 당진을 대표하는 국회 의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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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종만(林錝萬)[1892~1933]은 1892년 8월 21일 당진시 신평면 초대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당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이후 정학원 등과 함께 합덕, 범천, 신평 청년들의 조직인 신합 청년회를 조직하여 청년 운동을 이끌었다. 1924년 당진 소작 조합을 결성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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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자개리 일대에서 발굴된 선사 유적. 자개리 1지점 유적은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58기와 석관묘 1기, 수혈 8기, 구덩이 4기 등이 확인되었고, 구릉 정상부에서는 남북국 시대 석곽묘 3기가 확인되었다. 석곽묘 3기는 모두 할석을 이용하여 벽을 축조하였으며, 바닥 면에도 부분적으로 할석을 깔아 놓았다. 유물은 2지점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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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여일의 효자 정려. 1801년(순조 원년) 순천 장씨 장여일(張汝一)[1635~?]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장여일은 평소 효행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한겨울에 오이가 먹고 싶다고 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깊은 산 계곡을 헤메다 오이를 발견하여 어머니에게 드려 병이 낫게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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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민주 노총 산하 노동조합의 협의체. 헌법 33조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로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노동 3권의 보장으로 노동자들은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고, 단체 교섭과 단체 행동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신장과 복리 증진을 이룰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산업화가 이루워지고, 고용된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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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학원(鄭鶴元)[1892~1933]은 당진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면천 보통학교 1회 졸업생으로 1915년 공주 농업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미곡상과 사립 보통학교 교사 등을 지냈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당진 소작 조합을 창립하여 소작 쟁의를 조직하였으며, 민족 협동 전선 신간회 당진 지회를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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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공세미를 보관하고 경창에 운송하기 위해 설치했던 저장 창고. 조창(漕倉)은 조운창(漕運倉)의 줄인 말로서, 지방의 각 고을에서 세금으로 징수한 곡식 등 세곡을 도읍지로 운송하기 위하여 해안이나 강변에 설치한 창고이다. 우리나라에 조창이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 시대였다. 10세기 말 지방 제도를 확립하면서 이를 토대로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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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운산리에서 석문면 초락도에 이르는 지방도. 대한민국의 일반 지방도(地方道)는 광역시도의 지사나 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와 국가가 건설하고 광역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가 있으며, 지방도는 자치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이다. 지방도가 되려면 도청 소재지로부터 시청 또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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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창리에서 송악읍 중흥리에 이르는 지방도. 대한민국의 일반 지방도(地方道)는 광역시도의 지사나 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와 국가가 건설하고 광역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가 있으며, 지방도는 자치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이다. 지방도가 되려면 도청 소재지로부터 시청 또는 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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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반촌리에서 송산면 가곡리에 이르는 지방도. 대한민국의 일반 지방도(地方道)는 광역시도의 지사나 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와 국가가 건설하고 광역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가 있으며, 지방도는 자치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이다. 지방도가 되려면 도청 소재지로부터 시청 또는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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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를 기점으로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서 고대면 진관리를 지나는 지방도. 대한민국의 일반 지방도(地方道)는 광역시도의 지사나 시장이 관리하는 도로를 말한다. 도로는 국가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일반 국도와 국가가 건설하고 광역 자치 단체가 관리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가 있으며, 지방도는 자치단체가 건설하고 관리하는 도로이다. 지방도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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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도곡리에 있는 창녕성씨의 효부문 창녕성씨 효부문(昌寧成氏孝婦門)은 윤정호의 부인 창녕성씨(昌寧成氏)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부문이다. 창녕성씨는 문용공 석용의 후손 성의환의 딸로서 윤진태의 아들인 윤정호의 아내가 되었다. 창녕성씨는 윤씨 가문에 출가한 후로 정성을 다해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과 화목하게 지냈다. 가난하였으나 가정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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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서 일어난 '대호지 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을 기리기 위해 순국 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彰義祠)는 '당진 대호지·천의 장터 4·4 독립 만세 운동'에서 순국한 선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당진시에서는 이러한 순국 선열들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1989년부터 기념 사업회가 발족되면서 추모제·추모각·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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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봉수제(烽燧制)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통신 수단이었다. 특히 고려 말에 왜구를 방어할 목적으로 봉수제가 강화되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태종 때에 이르러 이미 봉수제가 실시되고 있음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1406년(태종 6) 12월에 조수일(曺守一) 등을 거제현(巨濟縣) 봉졸로 장배(杖配)하였다고 하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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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최충의 영정. 최충(崔沖)[984~1068]은 고려 문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최충의 영정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무수리에 있는 해동 영당(海東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최충은 1005년(목종 8)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뒤 문하시중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70세에 사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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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고려 시대 무신 인당의 사당.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죽동리에 있는 충정사(忠貞祠)는 교동 인씨(喬桐印氏) 시조인 석성 부원군(碩城府院君) 인당(印璫)[?~1356]의 신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인당은 고려 충렬왕 때 태어나 공민왕까지 4대에 걸쳐 문과대언, 밀직사(密直使), 만호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생 동안 왜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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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앞에 세워 놓은 석비. 하마비(下馬碑)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운 비석이다. 서원이나 향교, 사찰뿐 아니라 왕이나 장군·고관·성현들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놓기도 하였는데, 이들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인 듯하다. 기록에 따르면, 1413년(태종 13) 2월에 처음으로 예조에서 건의하여 왕의 허가를 받아 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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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 있는 한국 노총 산하 노동조합의 협의체. 헌법 33조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로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노동 3권의 보장으로 노동자들은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고, 단체 교섭과 단체 행동을 통해 노동자의 권익 신장과 복리 증진을 이룰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산업화가 이뤄지고, 고용된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결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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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금곡리 한음 영당에 모신 조선 후기 문신 이덕형의 영정. 한음선생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의 초상화로, 현재 ‘한음 영당’에 보존되어 있다. 한음선생 영정은 1590년경에 당시의 궁중 화가 이신흠(李信欽)이 처음 그렸다. 한음의 9대 종손 이의익(李宜翼)이 1860년대에 당시의 궁중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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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한진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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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소소리에 있는 농공 단지. 농공 단지는 산업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의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1984년부터 시행된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에 따라 공업 단지를 농어촌에 조성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농어촌 지역의 지방 자치 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이 지금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며, 도시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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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고의 미곡 생산지 당진과 당진 농업의 상징 합덕제. 당진시는 전국 최대의 미곡 생산지이다. 당진시의 벼 재배 면적은 20,246㏊로 전국 네 번째에 불과하지만, 미곡 생산량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연간 12만톤 정도의 쌀을 매년 생산하고 있다. 단위 면적[10a]당 생산량은 단보당 579㎏으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는 삽교천 유역의 토질이 비옥하여 지력이 높고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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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에 있었던 옛 홍주의 조창 터. 당진시 순성면 중방리는 원래 면천군 가화면 지역으로 중방들에 마을이 생겼으므로 중방들 또는 중방평이라 하였다. 중방리에는 옛 신남면 창리 지역이 포함되었는데 현재의 북창 마을이다. 홍주 북창은 북창 마을에 있었던 옛 홍주의 조창으로, 북창 마을의 지명은 바로 이곳이 홍주 북창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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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당진시에 있었던 옛 당진현의 공무를 담당하던 역. 홍세역(興世驛)은 당진현 관할의 역이었다. 흥세역은 순성역에 비해 규모가 작았는데, 이는 당진현이 면천군의 속현이었기 때문이다. 흥세역에는 기마(騎馬)가 4필, 짐 싣는 복마(卜馬)가 4필, 역리(驛吏)가 17명, 노(奴) 2명, 비(婢) 2명이었고, 금정역에 속해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